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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순간] (26) 한승원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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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시의 한순간] (26) 한승원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

입력
1999.09.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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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내 소설을 써온 나에게 시는 무엇인데 왜 줄곧 쓰고 있는가. 이번의 「노을 아래서 파도를 줍다」(문학과지성사 발행)가 세번 째 시집이다. 그 시집 가운데서 졸작시 「다시 가을 편지」를 읽혀드리고 나서 그 까닭이란 것을 이야기 하겠다.「그 누구인가가/ 허공에 늘어뜨려놓고 있는/ 사천팔만억 개의 유리 구슬 주렴 속으로/ 천리 밖의 섬이 옹기종기 모여들고/ 질펀한 청자빛 바다 물너울 위에서/ 눈부신 태양 빛살과/ 수억천 마리 금빛 고기들이 혼례 치르고 있는/ 내 공화국의 정원으로/ 그대의 먼지 앉은 음습한/ 영혼 보내주십시오/ 보송보송하게 해바라기하여 보내드릴게요」.

산에 오른 사람들은 하룻밤 지새울 천막을 친다. 죽음을 앞둔 자는 자기 몸뚱이 담을 관과 묻어야 할 무덤터를 마련한다. 짐승은 자기 몸 숨길 구멍을 판다. 그것은 자기를 좀더 안존하게 가꾸려는 것이고 겉돌고 떠돌려고 하는 삶과 화해하려는 것이다.

시인이 자기 주위의 푸나무, 꽃, 새, 산, 강, 바다, 하늘, 별, 달을 노래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체취를 그리워하고 벗에게 정을 주려 하는 것은 그들 속으로 스며들기 위함이고 그들을 품 속에 수용하기 위함이다.

하루의 시작을 예고하는 황금빛의 너울도 「노을」이라 말하고, 하루의 끝을 알리는 주황빛의 파장도 마찬가지로 「노을」이라고 말한다. 나에게 있어서 노을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다. 하나는 기울어감이고 다른 하나는 또 한나의 시작이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또 하나의 새 길이 시작되는 것이다. 서울을 버리고 전라남도 장흥 율산 바닷가 마을에 와서 새로이 집 한 채를 짓고 사는 까닭이 그것이다.

시는, y축인 시간과 x축인 공간이 만드는 자리에 어리는 화엄의 빛을 포착하기, 또는 그 순간에 떨고 울음 우는 영혼 붙잡기 혹은 법열을 새벽 같은 보석으로 만드는 일 아닐까. 아니다. 시는 다음과 같은 구실을 하는 것일 터이다. …그대의 먼지 앉은 음습한 영혼을 보송보송하게 해바라기하여 보내드리는 구실.

▨ 시인 한승원은 낯선 이름이었다. 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에 소설로 등단해 욕망, 구원, 생명 등의 문제를 인상 깊게 요리해 낸 발군의 소설가로 30년 넘게 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첫 시집 「열애일기」(91년)를 내놓고 4년마다 한 권씩 내는 시집에서 그는 만만찮은 시재(詩才)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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