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의 국어의 풍경들언론인 출신 자유 기고가 고종석(40)씨가 우리말의 기원과 올바른 쓰임새 등을 정리한 산문집 「국어의 풍경들」(문학과지성사 발행)을 냈다. 올해 들어서만 그는 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감염된 언어」 「언문세설」 등 2권의 책을 써냈다. 여기 저기 발표했던 글을 정리해서 모으다 보니 출간이 줄을 잇기도 하겠지만 어쨌든 그는 언어에 대한 재주도, 그에 대한 애착도 범상치 않은 사람임에 분명하다.
「국어의 풍경들」에 담긴 짤막한 이야기들 가운데 가장 감칠 맛나게 읽을 수 있는 글은 규범의 틀을 벗어나 있지만 일상에서 생생하게 쓰이는 언어의 용법을 보여주는 대목. 역전 앞, 외갓집, 산채 나물, 단발 머리, 추풍령 고개…. 한 마디 속에 같은 뜻이 겹치는 잉여적인 표현들이다. 바른 말을 고집하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다 고쳐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역전이어야 하고, 박수는 치는 것이 아니라 박수해야 하며, 유언을 「남겨서」는 안되고 「해야 한다」는 식이다. 하지만 고씨는 이런 관습이 생긴 데는 나름의 사회·심리적인 이유가 있고, 그것을 많은 사람이 쓰고 있다면 굳이 틀린 말로 여겨야 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작은 대문이라는 것은 문은 크되 정문이 아니라 옆문이라는 의미를 담을 수 있다고 해석하는 식이다.
또 고씨는 유행어를 시대의 거울로 설명한다. 구악일소, 국시(國是) 등은 5·16 쿠데타 직후, 『나는 한다면 하는 사람입니다』는 박정희 대통령 암살 뒤 김재규의 입에서 나온 뒤 유행한 말들이다. 지난해는 총풍, 세풍 따위의 신조어가 생겼다. 책에서 놓칠 수 없는 또 하나의 주제는 그가 「북한말의 풍경들」을 간략하게나마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일인 숭배와 이데올로기의 사슬에 묶인 북한말의 참담한 모습을 그도 개탄하고 있다. 수령님 앞에 붙은 원고지 서너 장 분량의 수식어들을 보고 그는 『20세기 한국어가 입은 커다란 상처로 기록될 것』이라고 한숨지었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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