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날, 벽난로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다른 사람 욕하는 것보다 더 행복한 일은 없다」(「리더스 다이제스트」에 실린 말). 책 한권이 통째로 누군가를 욕하기 위해 만들어진 「벌거벗은 지식인」은 누군가를 비방하는 것이 칭찬하는 것보다 즐거운 사람들에게는 매우 행복한 책이다.「대적할 수 없는 완벽한 정신을 지닌 사람」(칸트), 「숭고한 천재」(셸리), 「예수와 같은 정신, 천당의 천사들만이 같이 할 수 있는 인물」(쉴러). 지식인들로부터 이런 찬사를 한 몸에 받은 인물은 바로 장 자크 루소(1712~1778).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계몽주의 철학의 창시자인 그는 프랑스 혁명 전에 죽었음에도, 구체제의 일소를 위한 철학적 바탕을 제공한 지식인으로 추앙받고 있다. 그러나 그는 23세부터 33년간 정부였던 여인을 육체적으로 학대하면서 둘 사이의 아기 다섯명을 고아원에 버렸다. 문제는 그가 자신의 지성을 이용해 과오를 더욱 교묘히 합리화하는 가증스러운 일을 감행했다는 것이다. 『다락방이 잡동사니로 가득 차고 애들이 울어대는 데서 어떻게 마음의 평온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겠는가』고 그는 말했다.
정치사상도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그는 『대중이 움직일 때의 위험을 생각해보라』 『나는 혼란과 폭력, 그리고 피비린내를 가져오는 혁명의 음모와는 인연을 맺지 않겠다』고 말하는 등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했다.
루소 뿐 아니다. 노동자 해방을 부르짖던 마르크스. 그는 가정부에게 45년간 임금도 주지 않으면서 성과 노동을 착취했고, 여성해방을 부르짖은 「인형의 집」의 작가 입센은 여성에 대한 이해 없이 그저 머리 속에서 시대에 아첨하는 여성 스타일을 만들어냈을 뿐이다. 톨스토이는 사창가를 드나들면서 여성과의 교제가 사회악이라고 주장했고, 헤밍웨이는 거짓말이 병적인 수준에 이를 만큼 터무니없는 인간이었다. 사르트르는 여성을 인간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논리정연한 러셀은 자신과 다른 의견을 내는 이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그렇다면 이런 인간적 오류 투성이의 사람들이 세기의 지성인으로 여전히 추앙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이 부분에서도 공격의 고삐를 늦추지 않는다. 그들이 창조한 것은 하나의 관념, 이데올로기 일 뿐이지 과학이나 인간에 대한 철저한 이해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모든 지식인의 이론은 끼리끼리 칭송하는 강요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 방대한 자료. 영국 언론인 출신인 지은이는 누군가를 가장 효율적으로 비난하기 위해서는 「핏대」가 아니라 그들의 주장과 언행을 낱낱이 공박할 수 있는 객관적 자료가 필요함을 입증했다. 그러나 시각에는 문제가 있다. 「수신제가(修身齊家)」한 후에야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할 수 있다는 보수적인 논리는 정치쟁점 보다는 사생활을 들추는 것으로 상대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 이미 소개된 적이 있으나, 최근 을유문화사가 저작권 계약을 맺고 내용을 일부 보충 출간했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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