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수많은 산사태현장을 관찰하면서 우리나라의 절개지 건설공사가 애초부터 위험성이 많다는 것을 파악하고 2년전 한국일보의 전문가진단이란 칼럼에 근본적인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그런데도 관련 건설 당국은 마이동풍(馬耳東風)이었고, 그러다가 똑같은 문제 때문에 지난 10일 부산의 한복판에서 절개지가 붕괴되는 일까지 발생했다.부산 황령산 산사태 현장을 관찰한 필자는 지금까지 국내에서 발생하는 일반적인 산사태와 너무도 흡사한 원인으로 붕괴된 것을 보고 전율을 느꼈다. 도로쪽으로 기울어진, 점토가 충전(充塡)된 절리를 따라서 교과서적으로 붕괴된 것이다.
이처럼 원인은 단순한데도 불구하고 건설기준은 지질특성들을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63도로 깎도록 규정하고 있으며 또한 감리기준도 미흡하므로 공사중이나 공사후에 빈번히 무너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절개지 공사에 관련된 기술자들에게 물어보면 이구동성으로 설계기준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지적하는데 왜 건설당국자들만 모르고 있는지 안타깝다.
60년대식 불합리한 기준에 의하여 시공되었고 현재도 시공되고 있는 위험 절개지가 전국 도처에 얼마나 많이 방치되고 있는지 관계당국은 알고 있는가. 특별한 위치를 지적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며 부산에 비가 오면 부산 절개지가 무너지고 강원도에 비가오면 강원도 절개지가 무너지는 것이 현실이다.
절개지가 붕괴되면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며 막대한 복구비용이 소요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후된 건설기준 때문에 책임소재가 불분명할 수 밖에 없어 천재지변 탓으로 쉽게 원인을 돌리고 근본적인 문제점은 덮어져서 산사태 피해가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필자는 전국에 걸쳐서 산사태 연구를 하면서 부산지역이 우리나라 대도시중 가장 산사태 위험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파악, 공교롭게도 3개월전에 관련 학술지에 「부산지역의 산사태 위험연구」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연구결과에 따르면 황령산 지역을 포함하여 부산지역은 43%가 산사태 위험지역이었다. 이는 서울지역의 8%가 산사태 위험지역인것과 비교해 볼 때 부산지역이 얼마나 지반 특성상 산사태 위험성이 높은가를 알 수 있다. 특히 황령산 지역은 매우 위험한 1등급지역으로 분류됐다.
만약 기존에 발생한 산사태의 원인을 철저히 분석해서 사전에 산사태 재해위험지도를 작성했다면 황령산 절개지를 건설한 해운항만청이 부산시에 건설계획서를 제출하였을 당시 황령산 지역은 산사태 위험성이 높은 지역이므로 일반적인 건설기준보다 정밀한 지질조사에 의해 절개지를 시공해야 한다는 의견을 부산시가 제시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이번처럼 대도시 한복판에서 대규모로 절개지가 붕괴되는 후진국형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 폭우시 12명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서울의 산사태 발생지역도 필자가 작성한 서울 산사태 재해위험도의 위험지역과 대부분 일치하고 있다.
외국에서는 사고예방 차원에서 활용도가 높아서 각종 지반 재해 위험지도를 작성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지금까지 인식부족으로 인하여 산사태 재해위험지도가 작성되어 활용되고 있지 않다. 우리나라는 70%가 산지여서 매년 산사태로 인해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대도시들은 그 지역의 지반특성을 고려한 산사태 재해위험도를 작성하여서 도시계획 차원에서 활용토록 해야 한다. /이수곤 서울시립대교수·토목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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