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재벌 개혁중 제2금융권 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실천방안이 당초 방침에서 크게 후퇴했다. 정부는 우리 경제의 현실을 수용한 것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그렇다면 정부가 현실을 너무 몰랐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그렇지 않고 알면서도 대(對) 국민용으로 일단 발표하고 수정했다면 이는 국민을 기만한 것이다. 어떤 경우든 이번 개선안은 국민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정부가 내놓은 제2금융권 지배구조 개선방안은 지난 8월25일 정·재계 간담회에서 합의한 재벌개혁 후속조치중 하나를 구체화한 것이다. 상당 부분은 정부가 주장해온 내용 그대로지만 지배구조의 핵심인 사외이사제와 감사위원회 관련 제도는 당초 방침에서 크게 물러섰다. 재벌이 제2금융권을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 운영하는 것을 차단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후퇴한 것이다.
정부는 은행 못지 않게 큰 역할을 하고있는 제2금융권의 재벌 사금고화를 막기 위해 사외이사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었다. 그러나 구조개선안은 이사 가운데 절반이상을 사외이사로 해야 하는 제2금융기관을 전체의 40%정도로 축소했다.
또 사외이사가 주축이 된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집행이사를 추천할 수 없도록 한 것도 당초 계획에서 상당히 물러섰다. 정부는 정·재계 간담회에서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집행이사와 사외이사 모두를 독점적으로 추천하는 권한을 갖게 되므로 앞으로 총수등 대주주가 임원을 마음대로 선임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그러나 정부는 한달도 못돼 입장을 바꿨다. 집행이사를 종전대로 지배주주가 결정토록 한 것은 경영권 보장 문제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간담회 당시 정부는 이같은 재계의 주장에 대해 『추천된 사람을 주총에서 뽑고 주총은 지배 주주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경영권을 침해하는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었다.
이사회내에서 경영진의 전횡을 막는 기능을 하는 감사위원회 도입 대상도 사외이사와 같도록 해 당초 계획보다 축소됐다. 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신용금고와 모든 투자신탁, 보험, 증권사에 대해 감사위원회를 도입하겠다고 밝혔었다.
정부는 이같은 방침 변화의 이유가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자세히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정책의 기본은 일관성과 투명성이다. 한달도 못돼 기본방침을 바꾸면서 정부가 하는 일을 믿으라는 것은 무리다. 이번 개선안이 문제가 있어 바꾼 것이아니고, 재벌의 로비나 반발에 따른 타협의 산물이라는 일부의 지적에 대해 해명해야 한다. 연말까지 끝내겠다고 약속한 재벌개혁이 이런 방식으로 마무리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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