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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바시 르포] "민족웅비의 새천년을 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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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리바시 르포] "민족웅비의 새천년을 열자"

입력
1999.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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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천년의 문을 활짝 열 2000년 1월 1일이 이제 꼭 100일 앞으로 다가왔다. 인류사에 획을 그을 새로운 시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됐다. 천년이란 기간은 수십억년 인류사에 비하면 짧은 시간일지 모른다. 하지만 2000년 첫 새벽의 태양은 지구상의 인류를 전에 없이 환한 빛으로, 장구히 계속될 미래를 밝혀줄 등불로 떠오를 것이다.한국일보는 뉴밀레니엄 D-100을 맞아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나라, 적도와 자오선이 만나는 지점에 위치한 태평양의 소국(小國) 키리바시(Kiribati)의 일출을 현지 취재했다. 본보는 또 추석연휴 다음 날인 27일부터 「굿모닝 뉴 밀레니엄」이라는 제목의 밀레니엄 시리즈를 매일 연재, 지난 천년을 회고하고 희망찬 새 세기를 준비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알찬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다. /편집자 주

뉴밀레니엄 「오신타이(Otintaai)」. 새 천년의 「일출」.

지구의 첫 일출은 장려(壯麗)했다.

끝간데 없이 일렁이는 태평양의 물살 위로 낮지만 짙게 드리운 구름, 인류를 억누르고 있는 간난을 상징하는 듯한 그 구름을 뚫고 뉴 밀레니엄 D_100의 태양은 불덩어리처럼 뜨겁게 솟아올랐다. 미처 그 장엄함에 감탄을 억누를 사이도 없이 솟아올라, 눈부시게 지구 구석구석에 빛을 던지려 하고 있었다.

키리바시 사람들은 「일출」을 「오신타이」라고 부른다. 키리바시의 국기(國旗)는 바로 태평양의 일출과 그 위를 유유히 나는 갈매기의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 나라로부터 지구는 언제나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

지구상에서 새 천년의 첫 일출을 처음 볼 수 있는 곳으로 이 작은 나라 키리바시를 택한 것은 신(神)의 절묘한 조화일까. 키리바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문명에 마치 무관심한듯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의 나라다. 문명을 떠나있는 곳에서 새 천년 문명의 새벽이 열린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아이러니다.

환초(環礁)로 구성된 33개 섬과 8만명 남짓한 사람들이 사는 소국. TV도 없고 신문도 없는 문명의 외곽. 섬을 온통 에워싸고 있는 광활한 태평양의 물결과 매일매일 지구의 첫 새벽을 알리며 뜨고 지는 해, 물고기를 잡고 야자열매를 따서 말리며 자연과 하나가 된 사람들. 이들에게 문명은 오히려 이질적일 수 밖에 없다.

자오선상에서 비슷한 지점에 위치한 피지, 뉴질랜드, 통가 등이 저마다 뉴 밀레니엄의 첫 태양을 맞을 나라라며 관광객 유치에 열을 올리고 있지만 키리바시 주민들에게는 그런 움직임조차 호사가들의 사치로 여겨질 뿐. 그들에게는 새 천년이라는「시간」개념보다 평화로운 오늘의 생활이 더욱 중요하다.

키리바시 정부는 지난해 말 대통령 직속으로 「밀레니엄 특별대책 위원회」(Millennium Task Force Committee)를 설치했다. 이 위원회는 나라의 맨 동쪽에 위치한 캐롤라인섬을 밀레니엄섬(Millennium Island)으로 개명하는 등 관광객을 유치할 계획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 섬은 무인도로 관광객들은 갈 수 없고 실제 키리바시에서 뉴밀레니엄의 첫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은 이나라 동쪽 끝에 있는 크리스마스 섬. 불과 50여개의 객실을 가진 이 섬의 최대 숙박시설인 캡틴쿡호텔은 이미 지난해말 2000년 1월1일을 전후한 기간의 예약이 끝났다.

리테스 마닌라키 밀레니엄대책위 위원장은 『크리스마스섬에서 민박까지 포함해 최대 3,000명의 관광객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피지, 뉴질랜드 등이 수십만명의 관광객을 끌어모을 생각을 하고 있는데 비하면 참으로 소박한 구상이다.

이처럼 「문명보다는 자연, 현대적 생활보다는 평화롭고 고요한 삶에 가치의 우선 순위를 둔다」고 공언하는 키리바시에 20세기 인류는 지울 수 없는 상흔을 남겨놓았다. 수도 바이라키(Bairaki)가 위치, 4만명이 몰려사는 섬 타라와(Tarawa)에는 2차대전 당시의 격전지임을 상징하듯 일본군이 설치한 대포가 태평양을 겨눈 채 그대로 남아있다.

전후까지 인근 해역에서 계속된 미국의 원폭실험으로 수많은 섬의 주민이 자신들이 뿌리내리고 살던 섬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해야 했다. 새 천년 키리바시의 오신타이는 바로 평화보다는 싸움, 자연보다는 파괴에 기울어졌던 인류 역사의 오점을 씻기 위해 떠오르는 태양일지도 모른다.

키리바시=하종오기자

joha@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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