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시사회의 가상적 전형인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년」과 제레미 벤담의 「원형 감시체제」는 사실은 근본적 차이가 있다. 오웰이 그린 감시사회는 독재권력이 인간성을 말살하는 암울한 사회다. 반면 벤담이 복지국가의 모델로 제시한 투명한 유리벽 안의 원형 감시체제는 모든 시민의 복지를 돌보는 민주적 권력을 상징한다. 따라서 현대 민주국가의 사회감시 기능을 「1984년」에 비유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치 않다.■문제는 민주국가의 사회감시 기능도 권력의 속성때문에 흔히 민주적 통제를 벗어난다는데 있다. 또 전자 정보혁명에 따라 첨단 감시기술이 일반화하면서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영역까지 확대되고 있다. 국가는 유무선·컴퓨터 통신은 물론, 개인신상·범죄기록과 금융·신용정보, 의료기록과 차량운행까지 추적할 수 있고, 기업등 민간도 온갖 개인정보를 축적해 국가와 정보장악력을 다투고 있다. 오웰과 벤담의 상상력을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사회감시에서 가장 앞섰다는 영국 경찰은 주요도시 거리 곳곳에 감시카메라 30만대를 설치, 보행자와 차량을 감시한다. 감시카메라는 우범자등의 사진을 담은 검색 컴퓨터와 연결돼 즉각 경보를 보낸다. 범죄예방이 목적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개인의 움직임도 낱낱이 추적할 수 있다. 아파트 지하주차장등 도처에 깔린 민간 감시카메라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미국작가 데이빈 브린은 첨단정보사회를 「투명사회(Transparent Society)」라고 규정했다.
■그는 최근 이 제목으로 쓴 책에서 개인의 머리속 프라이버시만 보호되는 사회가 「1984년」처럼 되는 것을 막으려면, 「감시의 형평」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벽속에 숨은 빅 브라더와는 달리 모든 감시자의 존재를 공개하고, 경찰서에 인권감시 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민간도 국가를 감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얼마전 국가정보원이 밝힌 민간업자들의 관공서 도청사례는 물론 경우가 다르지만, 브린의 그럴듯한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강병태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