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 다음의 제시문을 읽고 아래 지시에 따라 논술하라.가) 제시문 (1), (2)가 공통적으로 다루고 있는 쟁점과 서로 다른 주장이 무엇인지 서술하고,
나) 제시문 (3)의 「나」가 「옹졸」한 이유를 제시문(1), (2)의 논지에 근거하여 두 가지 측면에서 설명한 후,
다) 「나는 얼마큼 적으냐」라는 자기성찰이 갖는 의의와 그 한계에 대하여 논술하라.
[제시문]
(1) 부당한 권력은 그 부당함에 맞서기를 꺼리는 개인들의 소극적이고 이기적인 태도 때문에 유지된다. 부당한 권력에 복종하는 사람들이 여러 가지 불가피한 이유들을 나열하지만, 그것은 대부분 자신의 나약함이나 기회주의적 성격을 변명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떤 형태의 권력도 진정으로 확실한 윤리적 태도와 지성을 가진 개인을 굴복시킬 수 없는 한, 외적 상황을 탓하는 것은 옳지 못한 것이다.
개인의 사사로운 욕망과 안락함을 추구하려는 경향 때문에 개인의 지성적 판단력과 윤리적 책임의식이 약해지는 것이야말로 인간을 나약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끊임없는 자기성찰, 공공적 관심에의 시민적 참여만이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물론이고 부당한 권력을 약화시키는 유일한 힘이다.
(2)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의사소통과 자율적 활동이 보장되지 못한 억압적인 정치상황 하에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우 적다. 그런 환경 속에서 개인은 스스로의 판단과 책임에 따라 행동해야 할 이유를 발견하지 못한다.
소신이라든지 창의성이라는 것은 오히려 불편함이나 손해를 가져올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적당히 관행에 따라 처신하는 행동이 몸에 배게 된다. 설사 자율적인 판단과 행동을 추구한다 하더라도 그 범위는 매우 좁은 개인적 일상사 또는 소시민적 활동에 국한되게 마련이다. 나약한 인간을 만드는 것은 개개인의 윤리의식의 부족함에 있다기 보다 그들을 타율적인 존재로 만드는 비민주적 환경에 있는 것이다.
(3) 왜 나는 조그마한 일에만 분개하는가
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
오십 원짜리 갈비가 기름 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
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
옹졸하게 욕을 하고
한번 정정당당하게
붙잡혀간 소설가를 위해서
언론의 자유를 요구하고 월남파병에 반대하는
자유를 이행하지 못하고
이십원을 받으러 세 번씩 네 번씩
찾아오는 야경꾼들만 증오하고 있는가
옹졸한 나의 전통은 유구하고 이제 내 앞에 정서로 가로 놓여 있다.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부산에 포로 수용소의 제십사 야전병원에 있을 때
정보원이 너어스들과 스펀지를 만들고 거즈를 개키고 있는 나를 보고 포
로경찰이 되지 않는다고
남자가 뭐 이런 일을 하고 있느냐고 놀린 일이 있었다.
너어스들 옆에서
지금도 내가 반항하고 있는 것은 이 스펀지 만들기와
거즈 접고 있는 일과 조금도 다름없다.
개의 울음 소리를 듣고 그 비명에 지고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놈의 투정에 진다
떨어지는 은행나뭇잎도 내가 밟고 가는 가시밭
아무래도 나는 비켜서 있다 절정 위에는 서 있지
않고 암만해도 조금쯤 옆으로 비켜서 있다
그리고 조금쯤 옆에 서 있는 것이 조금쯤
비겁한 것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니까 이렇게 옹졸하게 반성한다
이발쟁이에게
땅주인에게는 못하고 이발쟁이에게
구청직원에게는 못하고 동회직원에게도 못하고
야경꾼에게 이십 원 때문에 십 원 때문에 일 원 때문에
우습지 않느냐 일 원 때문에
모래야 나는 얼마큼 적으냐
바람아 먼지야 풀아 나는 얼마큼 적으냐
정말 얼마큼 적으냐......
(김수영,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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