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륜거(火輪車)에서 고속철(KTX·Korea Train Express)로」100년전인 1899년 9월18일, 노량진-제물포간에 33.2㎞의 경인선이 개통돼 이 땅에 처음 기적이 울렸다. 일본에 수신사로 다녀온 김기수가 여행기 「일동기유(日東記遊) 」를 통해 「화륜거(火輪車)」라는 이름으로 철도를 소개한지 22년만의 일이었다.
당시 경인선은 증기기관차 4대와 객차 6량, 화차 28량이 33.2㎞ 구간을 1시간30분(평균 시속 20∼22㎞, 최고 시속 60㎞)에 달렸으며, 1일 2차례 왕복했다. 대한제국은 우리 힘으로 철도를 건설하기를 원했으나, 열강의 각축끝에 일본이 대륙진출을 위한 교통로로 우리 철도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1905년 경부선에 이어 경의선(1906년) 경원선(1914) 호남선(1914년) 함경선(1928년)등 5대 간선이 개통됨으로써 한반도를 대각선으로 종관하는 간선철도망이 갖추어졌다.
이어 도문선·혜산선·만포선·경전선·동해선·평원선(평양-원산)·중앙선(춘천-경주)등이 건설돼 1930, 40년대 철도는 한국과 만주의 원료와 곡물을 일본으로 가져가고, 일본의 군대와 공업제품을 한국과 만주로 보내는 병참간선의 역할을 했다.
이 때 철도는 대륙까지 이어져 1938년 10월 1일부터 부산-북경(2,068㎞)을 38시간 45분에 주파하는 국제열차가 운행되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9월11일부터 남북간 철도 운행이 중담됨으로써 철도는 한반도를 종단할 수 없게 되었으나 한국전쟁 때 일시적으로 이어져 200만명 이상의 피난민을 수송하는 활약을 했다.
경제개발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60년대 철도는 에너지를 운반하고 기간산업을 육성하는 국가의 대동맥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70년대 고속도로시대가 열리면서 자동차와 수송역할을 분담하게 되었으며, 80년대이후 대도시 주변 광역교통수단으로서의 새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증기기관차로 시작된 철도는 그동안 비약적 발전을 이루어 67년 디젤기관차, 73년 전기기관차가 운행됐으며 2004년 경부고속철도 개통을 앞두고 있다.
조랑말과 우마차가 주요 교통수단이었던 100년전 철도의 등장은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지난 1세기동안 철도는 이 땅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크게 바꾸어왔으며 정치 경제 사회 군사등 모든 분야의 발전에 기여해왔다.
남경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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