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일화와 전설을 남긴 선종(禪宗)의 개조(開祖) 달마대사의 묘가 발견됐다. 일본 아사히(朝日) 신문에 따르면 일본의 화엄학(華嚴學)연구소가 최근 중국 허난(河南)성 뤄양(洛陽) 부근의 외국인 미개방지구인 슝얼산(熊耳山)에서 「菩提達摩大師頌」이라고 새겨진 석탑과 묘탑을 발견했다. 돌탑은 높이 3.6m, 묘탑은 높이 15m.인도명 보디 다르마(Bodhi_dharma)인 달마 대사는 한자로는 「達磨」 또는 「達摩」로 표기된다. 석탑 비문은 「梁武帝撰」이라고 돼있어 달마대사를 중국에 받아들여 새 설법을 펴게 한 양(梁) 무제(武帝·재위 502~549)가 직접 쓴 것으로 추정된다. 1,000자 가량의 비문은 달마대사가 대통(大通) 원년(527년) 중국에 입국해 당대 불교의 대가이자 「신지식인」이었던 무제의 도움으로 포교활동을 했고 대동(大同) 2년(536년) 12월 5일 뤄양 부근 용문석굴(龍門石窟)에서 숨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무제는 이 비문을 달마대사가 숨진 직후인 12월15일 썼고, 묘탑은 대동4년(538년)에 세워진 것으로 돼있다.
부처로부터 28대 조사(祖師)인 달마대사는 「불립문자(不立文字), 교외별전(敎外別傳), 직지인심(直指人心), 견성성불(見性成佛)」의 네 구절로 요약되는 중국 선종의 창시자다. 샤오린사(少林寺)의 동굴에서 9년간 면벽좌선(面壁座禪)을 했고 좌선 도중 깜박 잠이 든 것에 화가 나 눈꺼풀을 잘라내버렸는데 땅에 떨어진 눈꺼풀에서 차나무가 자라났다는 등 많은 일화를 남겼다.
일본의 불교사 연구자들은 후세에 달마대사를 높이기 위해 비문을 창작하고 석탑과 묘탑을 세웠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서도 고고학적 입증만 거치면 불교사를 새로 써야 할 대발견이라고 흥분하고 있다.
신윤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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