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찰」로 자처해온 미국이 올들어 경제제재 조치를 잇달아 완화하고 있다. 미국은 베를린 북미 고위급회담에서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 유예를 약속한 북한에 대해 50년 묵은 제재를 완화하고 이라크에 대해서도 조만간 석유 판매 허용량을 늘려줄 전망이다. 이에 앞서 지난 7월에는 이란 리비아 수단에 대한 경제제재를 부분적으로 완화했고 올초에는 「야구외교」로 쿠바와의 분위기가 좋아지면서 직항기 운항을 증편하는 등 적극적인 화해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중동의 「깡패국가(Rogue States)」 시리아에 대해서도 이스라엘과의 평화정착이 가시화할 경우 완화 조치가 뒤따를 예정이다.이렇게 되면 미국이 규정한 7개 테러지원국 모두에 대해 전향적 조치를 취하는 셈이 된다. 여기에다 미국은 75년이후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베트남에 최근 최혜국(MFN) 지위를 부여, 관계를 완전 정상화했다. 물론 미국의 유화 제스처는 아직은 제한적 수준이기때문에 테러국가에 대한 봉쇄(Containment) 정책이 전면수정됐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종전까지의 봉쇄 고삐가 최근들어 한층 느슨해진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제재완화는 무엇보다 봉쇄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자기 반성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제임스 폴리 국무부 대변인은 『경제봉쇄는 무력개입과 함께 테러 확산을 막기 위한 두개의 기둥으로서 상당한 효과를 거두었다』고 자평했지만 실제 미국의 봉쇄에 굴복한 나라는 지금껏 하나도 없었다. 오히려 미국은 봉쇄조치가 당초 목표와는 달리 독재자나 테러단체 보다 해당국의 빈곤층에 더 큰 타격을 준다는 국제적 비난을 감수해야 했다.
여기에다 냉전이후 걸핏하면 경제제재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로 사용하며 「팍스 아메리카나」를 지향해온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견제도 무시할 수 없다. 중국 등 견제국가들은 미국의 일방적 조치를 사사건건 독단적 패권으로 비난했고 미국은 그때마다 국제적 동의없이 외롭게 싸워야 했다.
더구나 제재 남발이 자충수를 둔 측면도 없지않다. 미 국제경제연구소는 클린턴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선포한 금수나 교역단절 등으로 입은 미국의 경제적 손실이 연간 150억~190억달러라고 추정했다. 고립의 화살이 오히려 미국으로 되돌아간 형국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도 최근 『미국의 기준에 맞지않는 나라를 모두 제제한다면 미국이 외교를 할 수 있는 나라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유일 패권국가인 미국이 테러, 인권탄압, 마약밀매 등에 관해서 세계질서를 흩뜨리는 국가에 대한 통제를 포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미국의 제재완화는 오히려 이들 국가에 적극적으로 「개입(Engagement)」하는 성격을 여전히 갖고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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