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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문산, 연천] 한숨만 쌓이는 '恨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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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해 문산, 연천] 한숨만 쌓이는 '恨가위'

입력
1999.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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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이 다 무슨 소용입니까. 차례 올릴 쌀 한톨도 없는데…』수마가 할퀴고 간 뒤끝. 추석이 1주일 앞으로 다가섰지만 수재민들은 빈손으로 조상을 기리고 가족들의 귀향을 맞아야 하는 절박한 현실이 야속하기만 하다. 더구나 실향민들이 많은 경기북부 수해지역에는 깊은 수렁에서 맞는 추석명절의 절망감이 절절하다.

16일 문산초등학교 체육관에 마련된 수재민 보호소의 한 귀퉁이. 경기 파주시 문산읍 문산4리의 조영섭(趙英燮·52·여)씨는 체념의 표정이 완연하다.

지난 여름 수해로 그나마 사글세로 있던 집이 완전히 파손돼 대피소에서 50여일째 꾸려온 옹색한 살림. 오랜 보호소 생활로 조씨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 버렸다.

『어려운 살림에도 매년 모시던 남편 제사도 올 추석은 힘들게 됐다』며 끝내 눈시울을 붉힌다. 60만원의 보상금은 조씨에게 어떤 위로도 되지 못했다.

『전국민이 낸 성금도 많다던데 우리한텐 왜 한푼도 안오는지 모르겠어요. 복구공사에 쓴다고 하던데 원망할수도 없고…』

운동장에는 어린 동심들의 가을 운동회가 한창이다. 웃음꽃이 만발한 어린이들의 표정과 교차하는 수재민들의 아픔. 체육관에는 아직도 갈곳없어 보호소 생활을 하는 수재민들이 6가구나 남아 있었다.

황해도에 고향을 두고온 실향민 이동복(李東馥·64·경기 파주시 문산읍 문산4리)씨에겐 올 추석이 여느해보다 가슴아프다. 수해로 전세들어 살던 집이 완전파손돼 보호소에 온지 50여일. 집주인은 전세금이 없어 내줄수 없다 하고 보호소외엔 당장 몸붙일 곳이 없다.

『예전엔 추석지원금이라고 나오던데 올해는 그것도 안나오고, 물 한사발이라도 떠놓고 북쪽에 대고 절이라도 올려야죠…』 『올해는 형님 산소에 벌초도 가지 못했다』며 이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딸과 함께 단둘이 살던 집이 수해로 완전히 파손된 안종분(62·여·경기 파주시 문산읍 문산4리)씨는 추석을 생각할 겨를조차 없다.

정부 지원금 278만원과 여기저기서 빌린 돈을 합해 1,100만원을 마련, 날림으로라도 살집을 지으려 했던 안씨는 업자가 중간에 돈만 챙기고 달아나는 바람에 하늘이 노랗다. 『그돈이 어떤 돈인데 사기를 치느냐. 이제 어떻게 살란 말이냐』며 안씨는 울음을 터뜨렸다.

한가닥 희망도 사라진 안씨에게는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말은 무색하기만하다.

막막한 추석을 맞이하기는 그나마 집으로 돌아간 연천지역 수재민들도 마찬가지다. 쓰러져 죽어있는 벼포기와 황토색 흙만 파헤쳐져 있는 인삼밭들이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경기 연천군 장남면 원당3리.

안유영(安有泳·52·경기 연천군 장남면 원당3리)씨는 5년동안 애써 가꾼 인삼밭 1,800칸과 4,500평의 논을 잃어버렸다. 침수되었던 집은 그나마 복구했지만 96년 수해때 입은 피해도 만회못한데다 이번 피해로 6,000여만원의 빚만 덩그러니 남았다.

『수확할 쌀도 없습니다. 농사꾼이 조상차례상에 햅쌀로 빚은 떡 하나 못올리게 됐으니…』 『서울에 나가있는 세딸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안씨는 허망한 표정을 지우지 못한다.

팔순을 바라보는 이종만(78·경기 연천군 장남면 원당3리)씨는 수해로 선산이 유실됐다. 『묘소 유실에 대해서는 지원금은 커녕 장비지원도 하나 안돼 손도 못돼고 있다.올 추석엔 조상님 뵐 면목이 없다』면서 이씨는 연신 헛기침을 해댔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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