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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헷갈림을 끝내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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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달영 칼럼] 헷갈림을 끝내기 위하여

입력
1999.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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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인권국가로서 자타가 인정하는 우리가 참여 안할 수는 없다』동티모르 파병에 대한 질문에 김대중대통령이 답변한 말이다. 지난 14일 국빈방문중이던 뉴질랜드에서의 기자간담회에서 였다.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외교무대에서 김대통령이 보여준 활약은 특히 동티모르 문제의 이슈화를 주도한 모습이 두드러졌다. 김대통령 개인으로서도 인권운동가로서의 국제적 이미지를 높였다는 것이 언론의 평가다. 그는 미·일·중 정상을 비롯한 여러 만남에서 『우리가 동티모르의 비인도적 사태에 입을 다물고 떠난다면 APEC에 대해 비판과 회의가 일 것』이라고 역설했다고 한다.

기자간담회를 보여준 TV화면에서 귀를 번쩍 열게 하는 말은 바로 『인권국가…』였다. 김대통령의 표정은 득의에 찼다. 동티모르의 비인도적 사태에 대한 문제제기에서 그 논의 수준을 APEC 전체로 확대시키기 까지, 김대통령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 점. 국제무대에서의 한국의 위상과 관련해서 「자랑스러운 일」이라고 말못할 바도 아니다.

『식량난을 겪는 북한 동포들을 조금이라도 더 돕고 싶지만 국민여론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이 말은 미국의 시사주간지 최근호가 보도한 김대통령의 인터뷰중 한 대목이다. 그는 APEC 참석차 뉴질랜드로 떠나기 직전에 서울에서 특파원들을 만났다고 한다.

역시 귀를 번쩍 열게 하는 말이 여기에도 있다. 『국민여론이 너무 부정적이어서…』이다.

이 말을 되새기자면, 북녘 동포들의 굶주림을 덜어주기 위해 대통령은 더 돕고 싶은 마음이지만, 부정적인 국민여론 때문에 그러지를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뉴질랜드에서의 「인권국가」와 미국 시사주간지에서의 「부정적인 국민여론」은 비슷한 시기에 나온 김대통령의 말이다. 배경도 의미도 전혀 다르지만, 이 두가지 말은 목으로 넘기기가 매우 불편하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나는 「자타가 인정하는 인권국가」로서 우리가 우리자신을 자만할 수 있는 근거가 과연 있는가 하는 자문(自問) 탓이고, 하나는 그토록 완강하다고 하는 「국민여론」의 실체는 무엇이며 「국민여론」을 빙자한 공의(公義)로 부터의 회피가 과연 옳은 일인가 하는 회의(懷疑)때문이다.

마침 뉴질랜드 기자간담회가 신문의 전면에 자세하게 보도된 15일자 한국일보의 한구석에는 「삭발단식 신부님들」이라고 작은기사(21면「등대」)가 숨어 있다.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 신부 20여명이 지난 7일부터 명동성당 가톨릭회관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중이라는 사정을 알 수 있다. 「국가보안법 철폐」가 그들의 요구다.

『…우리는 끊임없는 기본권침해로 인권을 유린하고 이 땅의 정의와 자유, 평화와 일치의 삶을 억압해온 국가보안법 폐지에 대한 사제적 의지를 오늘 단식기도로 드러내고자 합니다』

지난 7일 발표한 성명서의 한 대목이다. 『국가보안법이 죽든가, 우리가 죽든가 결론이 날 때까지 단식을 계속하겠다』는 그들의 화두도 「인권」이다.

지난 8·15 경축사에서 김대통령은 재벌개혁의 의지와 국가보안법 개정방침을 밝혔다가 야당으로부터 색깔론 공세에 휘말린 일이 있다. 이 공세로 야당은 언제나 그랬듯이 일정한 정치적 이득을 보았을 수 있다. 그러나 잦은 색깔론 공세가 언제까지라도 야당에 이득을 주고, 그리하여 「국민 여론이 너무 부정적이어서」 올바른 길 마저 돌아가도록 압박하는 요인이 될 것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의로운 일인가 아닌가이지, 실체가 모호한 여론눈치보기는 아니어야 한다. 더구나 대통령의 직무, 대통령의 역사적 소명이 무엇인가.

가령, 북녘동포의 굶주림을 돕자는 것은 당장의 여론에서 어떻게 반응되어 나타나든 명백한 인도(人道)이며 의(義)다. 큰 정치인은 이 인도와 의로움 하나에 의지해서 여론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의로운 일에 앞장 서는 설득자로서의 역할보다 더 중요한 대통령의 소명은 없다.

한반도에는 지금 냉전종식과 평화정착의 물살이 급하게 휘몰아치고 있다. 미국과 북한의 화해는 필연적으로 남북 당사자의 문제해결로 진전될 수밖에 없다. 세계인권선언 50년과 국가보안법 50년이 겹쳤던 것이 1998년이었는데, 우리가 진정한 「인권국가」로 다시 태어나기 위해서라도 1999년은 이 모든 헷갈림을 끝내는 해가 되어야 한다. 공익을 위한 과감한 결단이 요구된다./본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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