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감제도가 흔들리고 있다. 1914년 우리나라에 도입돼 신용거래의 거멀못 역할을 해온 인감제도가 지능화하는 사기범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이에따라 금융기관은 물론 인감증명서의 발급을 책임진 하위공무원들도 사기사건의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있다.
은평구청 민원봉사실에 근무하는 8급공무원 이모(39·여)씨. 이씨는 사기꾼에게 인감증명서를 발급해준 일로 4억원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였다.
95년10월 당시 서울 노원구 상계 1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서 발급업무를 담당했던 이씨는 민원인 A씨로부터 『새인감을 등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서류검토를 통해 새인감을 등재하고 인감증명서를 발급했다. 문제는 A씨의 주민등록증이 위조됐다는 사실.
A씨는 발급받은 인감증명서로 K상호신용금고로부터 6억원을 대출받아 잠적했다.
법원은 최근 『민원인의 인적사항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구청에 책임이 있다』며 노원구청에 이자를 포함한 4억원의 배상판결을 내렸고, 구청은 이씨에게 구상권을 행사했다.
충북 충주시 항성면의 경우에도 전문 금융사기단이 들고온 위조주민증만 믿고 인감증명서를 내줬다가 최근 11억8,000만원 배상판결을 받았다.
현재 민원인이 인감증명서를 신청할 경우, 담당직원은 본인임을 확인 후 발급하는 것이 원칙. 그어나 위조된 주민등록증을 제시하면 속수무책이다.
담당공무원들은 한결같이 『카드원부 사진이 10년이상 지난 것이 대부분이어서 본인 확인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인감도장 확인방식도 허술하기는 마찬가지. 일명 담배종이(비닐)에 도장을 찍어 원본과 육안으로 대조하는 것이어서 지능화하는 경제범죄의 표적이 되기 십상이다.
서울의 한 동사무소직원 문모(38)씨는 『개인간의 경제행위에 국가가 보증을 서는 꼴』이라며 『믿을만한 민간보증회사에 인감업무를 이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영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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