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살해범 김재규는 79년 11월18일 보통군법회의 최후진술을 통해 『이승만은 그만 두어야 할 때 그만 둘 줄 아는 지도자였지만 박정희는 그만 두어야 할 때 절대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기에 더이상 애꿎은 국민의 희생을 막기위해 그를 희생시키지 않을 수 없었다』고 범행의 불가피성을 강변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김의 이 주장은 상당한 설득력이 있었다. 박정희가 80년에 후계자에게 권력을 물려주려 했었다는 일부의 주장이 얼마나 허구인가는 새삼 재론이 필요치 않을 것 같다.■박정희만큼 역사적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은 드물성 싶다. 경제적 치적을 이유로 긍정적 평가가 있는가 하면, 영구집권을 위해 정치적 반대자를 무자비하게 탄압한 독재자로 기억하는 사람도 많다. 부마(釜馬)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하면서 「유연성」을 건의하자 『자유당때는 곽영주·최인규가 발포명령을 내려 총살됐지만 내가 발포명령하면 누가 나를 총살하겠느냐』고 강경대처토록 윽박질렀다고 김재규는 증언하고 있다.
■지금 들어도 소름끼치는 얘기다. 박정희는 유신독재를 위해 많은 정치적 반대자를 처형하거나 의문의 주검으로 몰아 넣었다. 지금 당장 필요한 것은 이들 억울한 죽음들에 대한 진상규명이다. 기념관건립사업이 우선적 관심사 일수는 없다. 국고 100억원 지원문제는 더구나 나중 일이어야 한다. 일의 선후를 따지더라도 건국대통령인 이승만기념관이 먼저다.
■동서화합도 좋고 국민회의의 전국정당화도 이해한다. 하지만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의 기념관건립에 정부가 앞장서는 일은 재고해 볼 문제다.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민간차원에서 하는 일이라면 무방하다. 정부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각종 의문사에 대한 진상규명이다. 그렇지않고 막대한 금액을 출연해 본들 쿠데타세력과의 원칙없는 타협이며, 국민의 역사관에 혼동을 주는 일이라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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