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북·미 고위급회담이 타결됨으로써 향후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북한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이 미사일 시험 발사를 유보하기로 한 것은 무척 다행스러운 일로 한반도 냉전구조 청산을 위한 「대장정」의 첫 발을 내딛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베를린 북미회담 결과를 보면서 유의해야 할 대목은 이번 회담이 어디까지나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를 유보시키기 위한 회담이었으며, 그 외에 미사일 수출, 배치, 개발에 관한 협상은 향후 협상과제로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이다.이번 베를린 북미회담 타결은 한·미·일이 북한에 대해 공동으로 제안한 「포괄적 접근방안」 즉, 북한이 핵개발과 미사일개발 및 수출을 포기하는 대신 대북제재 해제, 수교, 경제적 지원 및 체제보장 등을 한다는 제안을 북한이 일거에 수락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일단 한·미·일의 제안에 대해 협조적인 자세를 보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으나,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는 첩첩산중이다.
무엇보다 북한은 향후 협상에서 자신이 양보해야 할 부분을 최대한 잘게 썰어서 하나씩 협상해 나갈 것이며, 이에 따라 북미관계는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단계적 진전경로를 밟게 될 것이다. 미국이 우선 순위를 부여하고 있는 미사일 수출, 배치, 개발의 순으로 협상을 해 나가되, 미사일 개발은 북한의 생존과 직결되어 있는 문제이므로 쉽게 양보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한반도 냉전구조 해체과정은 무척 힘들고도 긴 여정이 될 것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할 때 우리는 다음 세 가지 사항에 유의해야 한다.
첫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하되, 조바심하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 북미관계와 남북관계가 정확히 반비례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미국과의 협상의 물꼬를 튼 이상 북한으로서는 남북관계를 신속히 개선시켜야 할 필요성은 별로 없다. 그러나 북한은 북한을 실질적으로 도와줄 수 있는 당사자는 남한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에게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지속적으로 인식시키되, 북한으로 하여금 남북대화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끼게끔 해야 한다.
둘째, 베를린 협상에서는 미사일 시험발사에 관한 문제에 국한되었지만, 향후 미사일수출에 관한 협상이 개시되면 수출포기에 대한 대가를 누가, 어떻게 부담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북한은 미사일수출 중단을 위해서는 연간 5억 달러를 보상해야 할 것이라며 다음 단계의 흥정을 준비하고 있다. 미국은 대북제재를 대폭 완화해 가는 선에서 타협을 시도할 것이나, 북한이 이에 만족하지 않을 경우 그 부담은 한국과 일본에게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미국이 현금보상을 거부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향후 우리는 북·미 협상이 아닌 한·미·일간의 협상에 대비해야 할 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북한이 향후 협상의 고비마다 들고 나오게 될 주한미군의 지위 문제에 대해 숙고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북한으로부터의 위협 소멸은 곧 주한미군 철수」라는 단순 도식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북한으로부터의 위협이 소멸된 이후라도 복잡한 미·중·일 관계로부터 파생되는 새로운 안보위협의 모습이 어떠할 지에 대해 생각해 보고서 주한미군 문제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진정한 전략적 사고가 요구되는 시점은 지금부터다./김성한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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