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은 13일 아침부터 오클랜드 박물관에 마련된 APEC 정상회의장에서 오전과 오후에 걸쳐 8시간30분 동안 진행된 릴레이 회의에 참석했다. 다른 20개국 정상들과 함께 뉴질랜드 정부가 마련한 요트점퍼를 입은 김대통령은 회의가 시작되자마자 의장국인 뉴질랜드 시플리총리의 지명에 따라 맨먼저 5분간 기조연설을 했다.아시아 경제위기의 교훈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한 김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일본 총리는 『김대통령의 발언 내용에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한다』며 한국의 경제위기 극복과정을 높이 평가했다. 오부치총리에 이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도 한국을 경제위기 극복의 성공사례로 꼽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특히 김대통령이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중산층의 몰락, 서민층의 고통을 지적하고 역내 국가간 격차의 해소 필요성을 역설하자 에드와르도 프레이 칠레대통령, 추안 릭파이 태국총리 등이 잇달아 공감을 표시했다. 김대통령이 이날 기조연설을 통해 제안한 내용중 13가지가 정상선언문에 반영됐다. 특히 김대통령의 제안중 역내 국가간 격차완화, 사회적 화합론, 경쟁과 협력의 병행, 중소기업과 벤처기업 육성, 여성참여확대, 지식격차 완화 등은 선언문의 중심어로 자리잡았다.
이어 여러차례 금융위기를 겪은 멕시코의 에르네스토 세디요대통령이 「국제금융기준(IBS)」의 마련을 제안했고 장 크레티앵 캐나다총리가 적극 지지하면서 국제금융질서 재편문제가 집중 논의됐다. 국제금융기준 마련 제안은 국제간 금융문제 발생시 채무국만 부담을 지는 관례에서 벗어나 채권금융기관도 일정한 책임을 분담하는 기준을 만들자는 취지에서 나왔다.
정상들은 세디요대통령의 제안을 선언문에 넣는 문제를 논의했으나 오전에는 합의를 도출하지 못했고 오후에 논란 끝에 선언문에 절충형식으로 추가했다. 추가한 부분은 「국제금융기준 마련을 위한 방안을 APEC 재무장관들이 연구해서 정상회의에 보고토록 한다」는 내용이다.
싱가포르 고촉통(吳作棟)총리는 WTO신무역협정 문제에 대한 기조연설을 통해 역내국가간 자유무역확대를 촉구했다. 그러자 세디요 멕시코대통령이 보조발제자로 나서 현재 회원국에 대해 아무런 구속력이 없는 APEC을 2005년쯤 구속력있는 기구로 격상시키자고 제의했다. 선진국은 2010년, 개도국은 2020년부터 회원국간에 완전한 무역자유화를 실시키로 한 「보고르(인도네시아)선언」의 이행을 위해서는 구속력있는 기구로의 격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상들간에 입장이 달라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김대통령의 이니셔티브로 추진돼온 「동티모르 정상회의」는 하비비 인도네시아대통령이 유엔평화유지군을 받아들인다고 전격 선언함에 따라 열리지 못했다. 정부 관계자는 『상황변화로 동티모르 정상회의가 열리지 못했지만 김대통령이 이번 회의 개막에 앞서 열린 개별 및 3자 정상회담에서 동티모르 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인권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를 APEC 정상들에게 각인시킨 것은 하나의 성과』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김대통령이 이번에 제의한 2000년 서울포럼의 성공적인 개최를 위해 국제통화기금(IMF)이나 세계은행(IBRD)과 같은 국제기구와 공동개최하는 방안을 추진중이라고 청와대관계자들이 전했다. 포럼 참석대상에는 미셸 캉드쉬 IMF총재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오클랜드=이영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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