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에 탄생한 낡은 이데올로기는 현대서구사회를 만나 진실과 설득력을 잃었다. 생산력도, 생산관계도 고전적 이론으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급변한 때문이다.미국의 사회학자이자 미래학자 다니엘 벨의 「이데올로기의 종언」은 일찌기 냉전시대에 이념 대결의 무용성을 일찌기 예견한 책이다. 64년에 출판됐으나, 90년 들어 소련과 동구권 등 공산진영이 급격히 몰락해감으로써 다시 조명받고 있는 저작이다.
책의 출발점은 50년대 미국의 사회변동. 화이트 칼라 계급이 급격 부상하고, 냉전의 긴장이 심화되던 시대였다. 미국에서는 가족자본주의의 개념이 붕괴하고, 사회주의는 해체의 조짐을 보이던 때이기도 했다.
그는 사회주의의 변동 또한 시대적 필연으로서 상세히 분석한다. 그 절정은 3장 「마르크스로부터의 두 개의 길」. 자본가가 소멸될지라도 노동자는 그들만의 정부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노동자 계급은 무지한 탓에, 지식인이 노동자의 대리자로서 지배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그는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이데올로기에 내재된 함정을 인식하는 순간, 유토피아에 대한 논의를 비로소 시작할 수 있다는 낙관이다.
이 책은 이후 「탈산업사회의 도래」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 등 지식 패러다임의 급변상을 묘파한 저작으로 이어져, 다니엘 벨 3부작의 길을 텄다. 특히 민족국가를 추구하던 적대적 관계에서 협력과 우호 관계로의 전환이 강력히 요청되는 지금, 이 책은 이데올로기의 「역지사지(易之思之)」 시대를 건너고 있는 우리에게 많은 생각거리들을 던져준다.
논지는 뚜렷하다. 「변혁의 명분 아래 부끄러운 수단을 합리화시키고 지난날의 논쟁을 보잘 것 없었던 것으로 돌려 버린 채, 언론의 자유, 반대의 자유, 연구의 자유가 지닌 고귀한 교훈을 잊기 시작한다면 이데올로기의 악몽이 되살아날 것이다」
그는 서구자유민주주의의 옹호 이론 덕택에 국내 일반에도 잘 알려져 있다. 71세이던 90년 「제3의 기술혁명」이란 제하로 내한 강연, 그의 위상을 새삼 확인시켰다. 또 96년 그는 국내 언론와의 인터뷰에서 『21세기가 되면 아시아의 영향력이 쇠퇴하는 반면, 컴퓨터 통신 바이오테크놀러지 등에서 월등히 앞선 미국의 헤게모니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다니엘 벨 약력
▲1919년 뉴욕 탄생 ▲컬럼비아대 정치학박사 ▲시카고대, 컬럼비아대, 하바드대 교수 ▲미국예술아카데미 회원 ▲「뉴 리더」「포천」 편집인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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