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이후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켜온 북한의 미사일 문제가 미·북간 베를린회담을 통해 한 고비를 넘겼다.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시험발사가 중단돼 한반도 긴장이 해소된 것은 물론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베를린회담 결과를 지나치게 확대해석하거나 앞으로의 전망을 낙관하기에는 이르다. 북한이 이번에 약속한 것은 대포동미사일의 「시험발사」를 일단 「중단」한 것에 불과하다. 그것도 미국이 원했던 명시적 합의에는 못미쳤고, 대북경제제재라는 선물을 북한에 먼저 제공키로 한 결과였다. 또 미사일발사의 완전중단인지 잠정중단인지도 분명치 않다. 사람은 누구나 불분명한 점들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싶어하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상황을 정확히 이해하고 미래를 냉철하게 전망해야만 근거없는 기대에 빠졌다가 실망하는 불필요한 과정을 반복하지 않는다.이번 합의는 북한미사일 문제해결을 위한 그야말로 작은 첫 걸음에 불과하다. 이번 합의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나 「수출」, 그리고 이미 한반도와 서(西)일본 등을 사정거리에 두고 있는 「실전배치」된 미사일 위협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미·북 양측은 앞으로 이런 문제들을 다루기 위한 회담을 계속하기로 했지만, 지난 3년여간 진행돼온 미·북 미사일회담이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의도도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다. 베를린회담 직전 북한은 서해의 북방한계선을 무효화하고 자신들의 해상군사분계선을 일방적으로 선포하였다. 이것이 단순히 베를린회담에서 그들의 입지를 유리하게 만들기 위한 것인지, 아니면 보다 장기적인 구도에 따른 움직임인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번 베를린 합의로 5월 페리 미 조정관이 북한에 전달했던 대북 포괄협상안의 논의가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의 핵-미사일 포기와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를 핵심내용으로 하는 포괄협상안은 충분히 시도해 볼만한 제
안이다. 사실 북한문제에 개개 사안별로 또 반사적으로 대처하기 보다, 포괄적인, 그리고 문제의 근원을 다루는 식의 접근은 옳바른 방향설정이다. 또 이를 통해 과연 북한이 대미 관계개선과 한반도 긴장완화로 나올 의도가 있는지 시험해 볼 필요도 있다.
그러나 이 역시 기대를 앞세우기 보다는 이러한 접근의 성사가능성이 어느 정도인지, 또 성과가 없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예상외의 변수는 없는지 등을 냉철하게 점검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령 포괄협상에 따라 미·북관계가 진전된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남북관계 개선으로 이어질지, 반대로 북한이 이를 오히려 한·미분열 공세의 기회로 삼을지는 알 수가 없다. 미·북관계만 진전되면 만사가 저절로 해결될 것으로 보는 것은 경솔한 생각이다. 따라서 한·미 양국은 긴밀한 협의를 통해 미·북관계 개선이 남북관계 개선과 한반도평화로 이어지도록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번 회담에서 나타난 북한의 협상방식도 주목을 요한다. 북한은 과거 제네바 핵협상시 핵문제를 과거-현재-미래의 문제로 세분화하여 최소의 양보로 최대의 보상을 끌어냈었다. 이번 미사일 회담에서도 북한은 미사일문제를 시험발사 중단, 수출, 개발, 실전배치 등으로 세분화하여 최대의 양보를 끌어내는 전략을 구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협상전략에 대해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도 앞으로 한·미가 고민해야 할 문제중의 하나다. /백진현·서울대교수·국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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