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으면서 기대하는 것은 대단한 가르침도, 재미난 이야기도 아니다. 복받치는 「서정(敍情)」만큼 시를 훌륭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없다. 요즘 시인들, 특히 젊은 시인들에게서는 이런 서정을 요리하는 빼어난 솜씨를 찾기 힘들다. 자학하거나 세상을 냉소하고 해체하려 드는 시들만 쉽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어지럽고 모진 삶 속에서 아름다움을, 따뜻함을 찾는 시들은 안타깝게도 드물다.대전에서 시를 쓰고 있는 유진택(42)씨가 최근 새 시집 「날다람쥐가 찾는 달빛」(문학과지성사 발행)을 냈다. 「아직도 낯선 길가에 서성이다」를 비롯해 이미 두 권의 시집을 출간했던 그의 시들은 늘 서정으로 충만하다. 그것도 가장 낯익은, 그래서 더욱 가슴을 울리는 진한 아름다움이 깃든 서정이다.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그리움, 가난한 이들의 고단한 삶에 대한 위안, 자연에 담긴 우수(憂愁), 그리고 70·80년대 젊은이들의 치열했던 삶에 대한 사랑이다.
「차라리 숯이 되는 것이 백 번 옳았어/ 결 고운 가구가 된 것을 뼈저리게 후회했지/ 부잣집 방안에 턱 버티고 앉아/ 수다떠는 여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면/ 숯이 된 친구가 미치도록 그리웠지/ 차라리 그때 그 친구를 따라갔더라면/ 난 지금 속이 까맣게 탄 숯이 되어/ 긴긴 겨울 밤/ 가난한 사람들의 가슴을 녹여주는/ 사랑받는 화롯불이 되어 있을 것을」(「숯 1」 전문)
시를 써내려가는 시인의 마음 한 구석은 「32인치 초대형 텔레비전을 사고/ 요술같은 컴퓨터를 들여놓아도/ 가난의 그리움이 목마르다」. 그래서 「노숙자에게」 연작을 통해 「나무와 영원히 벗이 되어/ 나무처럼 홀로 빈 몸으로 살아갈지 몰라」라며 가진 것 없는 이들을 다독거리거나, 「따스한 햇살 한 점 들지 않는 텅 빈 주머니에/ 가난한 손만 집어넣고/ 눈보라처럼 풀풀 흩어진 가족들을 그리워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기도 한다.
하지만 시인은 세상에 주눅들지 않았다. 「그래, 너 잘났다/ 나 배 따면 똥밖에 없다. 어쩔래」(「멸치」 전문)는 배포도 있고, 콩, 갈치, 대나무에 빗대어 옳은 것은 옳은 대로 틀린 것은 틀린 대로 바로 잡고, 바꾸는 변혁의 몸짓을 펴보이기도 한다.
반딧불처럼 빛나고, 귀뚜라미 소리 같은 울림을 가지고 있는 시다. 그리고 전통의 서정이 너무 잊혀져 가는 때이기에 더욱 빛난다.
/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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