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13일 김영삼(金泳三)전대통령의 민산재건유보 발표를 뜻밖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김전대통령은 조금씩 각도를 트는 것이 아니라 180도 전격 회전하는 스타일. 따라서 한번 발을 내디딘 이상 웬만해서는 쉽게 돌아서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민산재건 유보방침은 12일 밤 김전대통령이 김명윤(金命潤), 강삼재(姜三載), 박종웅(朴鍾雄)의원을 상도동으로 부른 자리에서 통보형식으로 이뤄졌다. 사실 민산재건 실무자들도 「방향선회」를 미처 예상치 못했던 것 같다. 이들은 13일부터 소속의원들을 상대로 입회원서를 돌릴 예정이었다. 사무실 계약까지 마쳤고, 시도협의회 책임자도 최종 낙점단계에 있었다.
이 때문에 이날 밤 회동에서는 반대의견도 있었다. 이총재가 초강수를 날린 뒤 곧바로 물러서면 백기를 든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는게 이유였다. 그러나 결국 『지금이 고삐를 잡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라는데 모두 공감했다. 이 시기를 놓칠 경우 민산이 자체 추동력을 받아 누구도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 수 있음을 김전대통령이 우려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무엇이 김전대통령을 움직였을까.
김전대통령의 성명서는 『야권 분열을 원치 않는 국민 여론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내년 총선 패배의 책임을 민산이 떠안게될 것이 부담스러웠다는 뜻으로 읽힌다. 또 경남고 동창모임인 「삼수회」 관계자들을 비롯, 최근 상도동을 찾은 인사들은 민산에 부정적인 여론을 가감없이 전달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민산을 통한 정치재개 반대여론이 부산·경남에서 조차 65.9%나 된다는 10일자 부산일보 조사결과도 작지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민주계의원들의 「진언」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신상우(辛相佑)국회부의장 서청원(徐淸源) 김무성(金武星) 등은 민산가입 의사를 밝히면서도 이같은 국민 여론을 환기시켰다. 지난주 예정됐던 한나라당 의원들과의 독대 계획이 6일 김무성의원의 방문이후 돌연 취소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편 일각에서는 10일 김덕룡(金德龍)부총재의 상도동 회동을 주목하기도 한다. 김부총재측은 이에 대해 『김전대통령의 말씀을 경청했고, 당내 사정, 국민여론 등을 충분히 전달했다』고만 밝혔다.
최성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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