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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지금 북간도에서는

입력
1999.09.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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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에서 왔습니다. 도와주세요』 취재목적이 아니고 우연히 만난 첫 북한동포에게서 들은 말 한마디가 오래도록 귓전에 맴돈다. 8월말 중국 옌지(延吉) 시내 한 음식점 앞에서였다. 막 도착해 늦은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등 뒤에서 함경도 억양의 어린이 목소리가 들렸다. 뒤돌아 보니 10살 전후의 소년 넷이 손을 내밀며 따라오고 있었다. 행색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여윈 정강이가 드러나는 깡똥한 바지에 헐렁하고 때 묻은 셔츠, 맨발에 검정 고무신을 신었지만 눈빛만은 초롱초롱 빛났다.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한 아이가 나서며 『무산에서 왔습니다』 했다. 언제 왔느냐니까 자신은 어제 두만강을 건너서 왔고, 나머지 셋은 온지 좀 오래라는 설명이었다. 부모가 없느냐는 질문에는 『엄마는 도망가고 아버지와 동생은 병들어 누워있다』고 대답하면서 내 표정만 살폈다. 돈을 얼마나 받게 될지 그것만이 관심사의 모두인 것 같았다.

그날 그 아이들 손에 쥐어준 돈은 하룻밤 노숙을 면할 잠자리 값에 불과했다. 넉넉히 주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가 되었다. 그보다 더 무겁게 마음을 짓누르는 것은 두만강 북쪽 옛 북간도 지역에 그런 어린이들이 자꾸 늘어간다는 현지동포들의 말이었다. 그런 애들이 하도 많아져 이제는 일일이 관심을 쏟기에도 지쳤다는 것이다. 두만강 경비병들이 그들의 도강을 눈감아 주는 모양이라 했다.

다음날 버스로 두만강 연안을 달리며 차창 밖으로 내다본 북녘의 산과 들은헐벗었고, 마을은 바닷속같은 정적에 휩싸여 있었다. 특히 도문(圖門)대교에서 바라본 함경북도 남양의 모습은 「유령의 도시」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도문세관 옥상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30분을 살펴봤으나 눈에 띈 사람은 셋 뿐이었다. 그중 한사람은 도문대교 북한측 경비원이고, 나머지 둘은 낡은 아파트 3층 복도에서 밖을 내다보는 주민이었다. 길에도 논밭에도 강가에도, 사람의 그림자가 없었다. 강둑과 물가에 더위를 식히러 나온 사람들이 우글대는 중국쪽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지금은 면소재지로 강등됐다지만 한때 도문시와 형평을 맞추겠다고 남양시로 승격시켜 전시용 아파트도 짓고 온성군청까지 두었던 도시의 모습이다. 세관직원 말에 따르면 90년대 초까지도 도문대교를 오가는 사람이 많았으나 93년 냉해 이후 인적이 끊겨 지금은 하루 화물차 10여대 통과가 고작이라 한다.

다음날 대북 농업협력 문제를 주제로 한 세미나에서 북한의 아사자(餓死者) 수가 화제가 되었다. 한 동포 교수는 230만명이라는 외신보도를 믿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더 많을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한국측 민간기구의 의뢰로 탈북자를 상대로 샘플조사를 해 추산해본 결론이라 했다. 탈북자 자신의 가족과 일가와 마을에 굶어죽은 사람이 몇이나 되느냐고 묻는 방법, 신빙도를 높이기 위해 이웃동네 아사자 수를 묻는 방법 두가지 조사에서 모두 230만명 이상이라는 추산이 나왔다는 것이다. 북한에 연민의 정을 품고있는 그 자신이 한국민간기구가 보낸 식량을 싣고들어가 살펴본 인상도 그렇다 했다.

옛 북간도지방을 둘러보는 며칠 사이 우리 일행은 개방정책 밖에는 북한의 기아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결론을 얻게 되었다. 60년대 북간도 지역에 지독한 3년기근이 들었을 때 동포들은 두만강을 건너가 북한 친지들에게 얻어먹고 흉년을 났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북한동포들을 도와가며 삶의 질을 높이려고 애쓰는 단계에 이르렀다. 자작농을 인정한 개혁·개방정책 30년의 결실이다. 중국정부로부터 30년 영농권을 얻어 자기농사를 짓게되니 생산의욕이 넘치고, 자연히 소출도 늘기 마련이다. 비료도 농약도, 영농기술도 종자개량도 다 중요하다. 그러나 내밭 갈아 내가 먹는 제도로 근로의욕을 불어넣지 않는 한 북한의 기아는 해결할 길이 없다. 이 간단한 이치가 북녘땅에서는 왜 통하지 않는지, 답답한 가슴을 안고 돌아온 북간도 여행이었다./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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