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4학년의 한 소녀는 KBS 동요 프로그램 「누가 누가 잘하나」를 빠지지 않고 열심히 보았다. 말도 잘하고 출연자에게 다정하게 잘 해주는 예쁜 언니가 너무 부러웠다. 그로부터 14년이 지난 89년 10월 그 소녀는 KBS 동요 프로그램 진행자가 됐다. 꿈이 실현된 것이다.대표적인 여자 MC, KBS 이금희(34) 아나운서.
3일 오전 6시 30분 KBS 신관 「아침마당」 출연자 대기실. 의상과 화장을 마친 이금희가 들어선다. 특유의 웃음으로 출연자들을 맞으며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벌써 2년째 「아침마당」을 해요. 아침 생방송하는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수도자 생활을 해야 하지요. 밤에 보고 싶은 친구도 못 보고 영화 한 편 보기 힘들죠』
그녀는 침대맡 자명종 소리에 일어나는 새벽 5시부터 퇴근후 대학강의를 준비하는 밤 12시까지 숨막히는 일상을 건강하게 소화하고 있다. 하루에 한 끼 먹기도 힘들다.
4월 프로 개편 전까지 「아침마당」 「국악한마당」 「TV는 사랑을 싣고」 등 5개 프로를 동시에 2년 동안 진행해왔다. 이런 그녀를 두고 왕종근 아나운서는 『철의 여인』 이라고 부른다. 부드러운 인상과 달리 방송할 때 보면 「독종」 이다. 『3월에 독감에 걸려 약을 먹고 방송을 하는데 식은 땀이 흐르고 쓰러질 것 같았어요. PD가 핏기 하나 없는 저를 보고 스튜디오에서 나가라고 해요. 하지만 방송을 포기할 수 없었어요. 방송이 끝난 뒤 의식을 잃었지요』 10시간에 걸친 생방송 「금모으기 행사」 를 진행하면서도 얼굴 표정 한번 바뀌지 않았을 정도.
흔히 듣는 맏며느리감이라는 말처럼 이금희는 세련되거나 튀는 MC가 아니다. 두툼한 얼굴에 서글서글하고 푸근하고 편한 인상이다. 꾸미지도 않는다. 이런 외양적 분위기가 그대로 프로그램 진행 스타일이기도 하다. 『동료들이 시청자는 날씬하고 예쁜 여자 MC를 볼 권리가 있다며 저보고 직무유기하고 있다고 해요. 살 빼라고 하는데 저같은 사람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반문이 유쾌하게 들린다.
방송한 지 10년 6개월. 그녀가 얻은 것은 마이너스로 떨어진 시력과 위장병,그리고 장기간 화장으로 인한 피부병. 하지만 누구도 얻지 못한 어린이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의 폭넓은 사랑을 받고 있다.
자신의 방송생활을 정리하고 싶어 최근 낸 에세이집 「나는 튀고 싶지 않다」 출판기념회 때 일. 한 50대 남자가 이금희 아나운서가 너무 좋아서 며칠을 기다렸다며 포옹을 했다. 그녀는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포옹에 응했다. 『얼마나 고마운 일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방송일의 보람을 느껴요』
『MC요? 방송과 시청자를 연결하는 다리라고 생각해요. 편안한 다리 구실을 하고 싶지요. 그리고 솔직하고 꾸밈 없는 진행자가 되는 것이 희망입니다』
숙명여대 정외과를 나와 한번의 낙방 끝에 입사한 방송사. 그리고 앞만 보고 달려왔다. 방송일이 소모적이라는 생각에 연세대 언론대학원에서 공부를 했고 모교에서 겸임교수로도 활동중이다.
딸만 다섯있는 집안의 네번째 딸. 『저와 언니만 시집 안갔지요. 두가지 일을 한꺼번에 잘 할 자신이 없어서요』 그녀는 진행 중에 눈물을 잘 비친다. 가슴 아픈 사연의 출연자를 만나면 이내 눈가에 이슬이 맺히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한다. 그렇게 솔직하게 시청자에게 다가간다. 에세이집에서도 밝혔듯 한때 동료와의 실연의 아픔으로 노래방에서 슬픈 노래만 불렀다는 가슴 여린 여자이기도 하다.
『자기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에서도 MC는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되고, 출연자가 진정한 주인공이 되어야 한다』는 이금희 아나운서.
KBS 2TV 「TV는 사랑을 싣고」를 이상벽과 공동 진행하는 이금희.
◇주요 진행 프로그램(KBS)
89년 「누가 누가 잘 하나」(TV)
91년 「6시 내고향」(TV)
92년 「노래의 날개위에」(라디오)
93년 「FM가정 음악」(라디오)
94년 「무엇이든 물어보세요」(TV)
95년 「국악 한마당」(TV)
96년 「TV는 사랑을 싣고」(TV·진행중)
98년 「사랑의 리퀘스트」(TV)
99년 「아침마당」(TV·진행중)
「이금희의 가요산책」(라디오·진행중)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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