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일의 시 「식칼론4」의 일부다. 시어로서는 꽤나 생소한 국가와 독재, 식칼 등을 날카롭게 등장시키면서 70년대식 저항의식을 일깨우던 그를 처음 본 것은 80년대 중반이었다. 우람한 체격에 남성적 체취가 강한 시를 거느리고 있었던 그는 몇번을 보아도 뜻밖에 조용한 모습이었다.■왁자한 술자리의 한 구석을 차지하고 말 없이 술을 마시면서, 눈이 마주치면 조용히 웃거나 소줏잔을 권할 뿐이었다. 70, 80년대초를 거치면서 그는 3번이나 투옥된 적이 있었다. 지난 7월 새 시집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가 나왔을 때 처음 보았을 무렵이 연상되었다.
■「식칼론」「국토」등에서는 지식인 다운 의지가 읽히고, 이 근작시 「메아리」에서는 혼자 조용히 타오르는, 순수한 내면세계가 보이는 듯하다. 「메아리」뿐 아니라 새 시집에 수록된 대부분의 시가 전에 썼던 저항시들과 커다란 변화를 보이고 있다. 새 시들은 유년기와 성장기적인 것을 넘어 근원적인 것으로의 회귀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새 시집이 나올 무렵 그는 암 판정을 받았고 2개월만인 7일 58세로 세상을 떴다.
■돌연한 죽음이 술로 인한 간암에서 비롯됐다고는 하지만, 더 멀리는 20년간 군사정부에 저항하며 건강을 해친 결과라고 볼 수밖에 없는 순교적 의미를 지닌다. 만년에 광주대 교수로 있었던 그와 문학적 유대를 이룬 현역 동향시인들로는 고은 김지하 양성우 이시영 황지우 등 빛나는 인맥이 있다. 조태일은 이중 김남주 고정희에 이어 한창 좋은 시를 쓸 나이에 세상을 등져 더욱 마음이 아프다. /박래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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