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하반기 대중음악계의 최고 「기획 상품」은 조성모였다. 여자 친구가 자동차에 갇혀 불에 타죽는 것을 눈 앞에서 보아야 하는 남자의 애절한 사연을 담은 한 편의 영화와도 같은 뮤직 비디오. 현란한 화면의 뮤직비디오에는 이병헌, 김하늘 등 주연 배우만 나오고 가수는 단 한 번도 얼굴이 나오지 않았다. 「To Heaven」이다. 하늘에 있는 연인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내용을 담은 노래는 순식간에 청소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조성모가 누구냐」는 궁금증이 증폭됐을 즈음 그는 얼굴을 비쳤고 100만장의 음반을 팔았다. 한 번 얼굴을 드러낸 후에는 한풀이를 하듯 TV 출연이 이어졌다. 뒤이어 나온 가수들은 그를 따라서 유명 배우를 뮤직 비디오에 출연시키느라 난리법석을 떨었다. 수백만원 불과하던 뮤직비디오 제작비가 억대를 넘어선 것도 바로 조성모 때문이다.
TV에 나와 운동도 열심히 하고(연예인을 중심으로 구성한 「드림팀」에서 그는 맹활약했다), 순진한 얼굴로 TV 광고(『나 군대간다』며 휴대폰을 여자친구에게 넘겨주는 광고)에도 나왔다.
만들어진 가수는 한 곡 뜨고 마는 게 가요계의 통례. 그러나 그는 「불멸의 사랑」, 댄스곡 「후회」까지 잇달아 히트시키면서 『생각보다 오래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에 나온 두번째 음반 「For Your Soul(슬픈 영혼식)」 역시 화제로 시작했다. 타이틀곡 「슬픈 영혼식」(이경섭 작곡·강은경 작사)은 신현준, 최지우, 정준호 등 유명 배우를 홍콩까지 데리고 가 뮤직비디오를 촬영했다. 홍콩경찰 신현준, 그의 애인 최지우, 홍콩 마피아 정준호의 대결. 1집과 달라진 것은 조성모가 신현준의 동생으로 나와 죽는 연기를 했다는 점이다. 왕가위가 무술장면 촬영에 도움말을 주었다고 한다. 역시 「To Heaven」으로 유명인이 된 뮤직비디오감독 김세훈이 찍었다. 그래서일까. 선주문이 90만장을 넘었다는 소문이다.
정작 노래는 어떨까. 「이제 서약해야 해/ 일생동안 사랑하겠노라고/ 넌 대답안해도 돼/ 내가 두 번 말하면 되니까」. 역시 죽은 애인의 사진을 안고 결혼식을 올리는 슬픔을 노래한 「슬픈 영혼식」은 쉬운 멜로디 라인을 갖고 있는 마이너 발라드. 「나이트 메어」 「상처」 등 빠른 댄스곡으로 변신을 모색하기도 했지만 역시 그의 주특기는 발라드다. 그러나 뮤직 비디오로 받고 있는 대단한 인기만큼 과연 그가 「가창력」을 소유했는가는 의문이다.
그러나 이런 의구심은 이제 「구식」 발상에 불과하다. 이제 나이 어린 대중은 더이상 가창력을 원하지 않는다. 좀 더 완성도 있는 뮤직 비디오, 그리고 기계로 음을 보정한 것이라도 귀에 듣기 좋으면 그만이다. 바로 그런 대중의 욕구 때문에 조성모는 여전히 유효한 「상품」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그러나 열광하던 가수를 순식간에 외면해버리는 것도 대중의 또 다른 속성. 그때 가수 곁에 남는 것은 뮤직비디오 보다는 노래라는 사실을 그도 알고 있을까.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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