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이광모 감독의 「아름다운 시절」로 유명한 영화사이다. 대표 역시 이광모 감독이다. 그것 하나라면 다른 영화사와 다를 것이 없다. 단지 좋은 한국영화 한 편을 만들었다는 것뿐.그러나 「백두대간」은 다른 소중한 의미를 가진 영화사다. 94년 8월 수익성 때문에 엄두를 못내고, 이런저런 규제로 포기했던 세계의 예술영화를 국내에 보급하겠다고 선언했다. 94년 8월의 일이다. 그리고 이듬해 2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희생」을 개봉했다. 책에서 읽고, 운 좋으면 비디오 복사판으로 봐야했던 영화들이 극장에 걸리기 시작했다. 이광모 감독은 『할리우드와 오락물 편중에서 벗어나는 영화운동차원에서라도 시작하고 싶었다. 어느 정도 가능성도 보였다』고 말했다.
외국영화사 창고에 먼지를 뒤집어 쓰고 버려진 필름을 찾아냈고, 필름 주인을 찾아 몇개 나라를 돌아다니기도 했다. 한국에서 이런 영화를 개봉하겠다는 말에 놀라 필름을 거저 준 영화사도 있었다. 그러기를 5년, 백두대간은 34편의 귀중한 영화들을 소개했다. 러시아 영화 「노스탤지어」 「붉은 시편」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꺼야」가 있었고, 「천국보다 낯선」 「이레이저 헤드」 「쥴 앤 짐」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도 개봉했다. 이란의 압바스 키아로스타미를 우리에게 알렸다. 「백두대간」은 상영후 필름을 모두 영상자료원에 기증했다.
그러나 이제 이런 소중한 기회나 자료축적도 마지막이 될 지 모른다. 18일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의 「검은 고양이, 흰고양이」 개봉을 계기로 「백두대간」이 예술영화 개봉을 보류했다. 갖고 있는 30여편중 상업적 호소력이 있는 몇 편만 내년까지 풀고 나머지는 창고에 쌓아두기로 했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이드리사 우에드라오고 감독의 「야바」(98년)도 들어있다. 『좀 더 상황이 나아지면』 『지금과 다른 기획으로』라는 전제를 달았지만, 현재로는 극장으로 나올 기약이 없다.
흥행부진과 극장잡기의 어려움 때문이다. 큰 돈은 아니지만 지난해 1월 「체리향기」 때부터 지금까지 12편에서 1,000만~2,000만원씩 본 손해가 쌓여 「옷」을 적시고 있다. 애초 각오한 것이었다. 더구나 돈을 벌자고 시작한 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갈수록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때 「내친구 집은 어디인가」에 6만명까지 몰렸던 관객도 사라졌다. 이름만 예술영화전용관이지 코아아트홀, 동숭시네마텍, 씨네하우스예술관까지 흥행에 집착해 오락영화에 매달린다. 그나마 생색내며 일주일 걸어주는 극장이 고마울 뿐이다.
설 자리가 없어진 예술영화. 『개봉방식도 상업영화와 달라야 하지만, 공간(극장)마련부터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이광모 감독. 그는 힘을 잃어가고, 우리는 예술영화를 감상할 기회를 잃어가고 있다. 극장이 많다고 좋아만 할건가. 극장수와 영화상영의 다양성은 별개인데…./이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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