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와 인권은 없다. 이곳에는 오로지 살려달라는 절규만이 있을 뿐이다』최근 동티모르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영국 BBC방송 특파원은 탈출기에서 이렇게 적었다.
25년간 20여만명이 숨지는 저항을 통해 쟁취한 동티모르인들의 독립 의지가 처참하게 농락 당하고 있다. 주민들은 이제 독립은 커녕 생존을 위해 고국땅을 등지고 있다. 그들의 민족자결을 실현시켜 주겠다던 유엔마저 쫓기듯 도망나왔다.
얼마전 코소보에서 인권을 위해서라면 전쟁도 불사했던 열강들이 이번엔 동티모르를 외면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한결같다. 「동티모르는 인도네시아 문제」라는 것이다. 세르비아의 인종청소를 저지하기 위해 주권 국가를 공격했던 강대국들의 강한 모습을 동티모르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서방의 인권 기준이 다분히 이중적이다.
서방이 동티모르에서 소극적인 이유는 무엇보다 인도네시아 정부를 자극하길 원치 않기 때문이다. 동남아시아의 자원부국, 비동맹권 주도국, 세계 최대 이슬람국가인 인도네시아를 건드려서 득될 게 없다는 눈치다.
그러나 역사는 열강들이 결코 동티모르 사태에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말해준다. 포르투갈은 300년간 이곳을 지배하다 무책임하게 떠났다.
미국은 70년대 냉전시대에 공산주의와 싸운다는 이유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강점을 묵인했다. 민병대들은 지금도 미국의 M16 소총으로 주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결국 국제사회의 냉정한 이해관계 속에서 민족의 자결과 인권, 평화라는 개념은 무용지물이 되고 있다. 동티모르인들은 국제사회의 외면속에 언제 끝날지 모를 외롭고 긴 싸움을 해야 한다. 80년전 3·1운동때 우리 민족이 그랬을 것만 같다.
국제부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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