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간에 선거구 개편 공방이 치열하다. 여당인 국민회의는 지역주의 타파와 선거비용 절감을 내세워 중선거구제로 개편하려고 선거법 개정안을 마련중이다. 이에 반해 야당인 한나라당은 선거구 개편은 권력연장 음모의 일환이며 소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릴 것이라며 현행 소선거구제를 고집하고 있다. 시민단체와 학자들도 중선거구제로의 개편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중선거구제를 도입하는 이유가 주로 지역주의 타파, 선거비용 감소, 신진세력의 국회진출 등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전혀 근거가 없다. 중선거구제를 도입하면 지역정당의 지역의석 독식현상은 여전한 채 기존의 지역주의 대신 소지역주의가 기승을 부리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호남에서 집권당이 3인 선거구에서 2∼3인을 공천하는 경우 후보자는 자신의 출신 시, 군, 구의 유권자에게 『이 지역에 국회의원이 없어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몰표를 주십시오, 옆의 시, 군, 구에서는 자기 지역 출신 후보에게 몰표를 주고 있다』는 선거전략으로 나가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중선거구제가 정당간 경쟁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소지역주의 대결 속에 지역정당과 무소속간의 경쟁이 될 것이다.
그리고 1구 10인 이상을 선출하는 대선거구의 경우 일반적으로 선거운동 비용에 비례해서 반드시 표를 더 많이 얻을 가능성이 매우 적기 때문에 다른 소선거구에 사무실이나 운동원을 확보하기 위해 돈을 쓰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3인을 선출하는 중선거구제의 경우 새로운 선거 사무실과 운동원 등을 확보하지 않을 수 없고 또한 다른 소선거구 유권자에게 인사라도 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더 많은 돈이 들어가게 된다.
또한 중선거구제에서는 신진세력의 의회진출이 어렵다. 왜냐하면 지명도가 높은 현역 국회의원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중선거구제에서는 과거 일본처럼 당내 파벌주의가 극성을 부리게 될 것이다. 중앙당에서는 동일선거구내 자당후보 2인이나 3인에게 똑같은 선거지원을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후보는 자기 당의 중간보스에게 선거운동지원을 부탁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중선거구제는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것이다. 더욱이 중선거구제와 권역별 정당명부식 비례대표제를 병행하는 제도를 도입하면 중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의 단점이 첨예하게 드러나게 된다. 즉 각 정당의 득표율과 의석율간의 비례성을 높이지도 못하고 소선거구제를 통해 비례성을 희생하는 대신 의회내 대정당을 만들어 내는 정국안정의 효과도 상실하게 된다./김용호 한림대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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