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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재벌개혁 중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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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재벌개혁 중간평가

입력
1999.09.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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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연대 참여사회연구소가 2년 가까운 작업 끝에 「한국5대재벌백서」를 금명간 출간한다고 한다. 필자는 그 내용을 사전에 한번 검토해 볼 기회가 있었다. 이 백서의 첫 번째 의의는 바로 「재벌문제의 객관화」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이 기회에 IMF 위기이후 재벌개혁의 성과와 과제를 차분하고 객관적인 안목에서 중간 점검해보자.현 정부의 재벌개혁을 편의상 제도개혁과 구조조정이라는 두 차원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자. 먼저 제도개혁부터 살펴보면, 현정부의 재벌개혁정책은 기본적으로 재벌을 시장의 울타리에 가두어 시장의 힘으로 재벌개혁을 달성한다는 시장주의적 해법이다. 정부는 이를 위해 IMF체제이후 각종 관련법규를 개정하고 새로운 정부정책들을 마련하였다.

그러나 법제도의 개악도 적지 않다. 그 중에서도 특히 공정거래법상의 출자총액한도 조항과 증권거래법상의 자기주식취득한도 조항의 폐지는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정부는 외국인 인수합병 제한을 완화하면서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보호하고 또 전략적 제휴를 저해하지 않는다는 차원에서 이들 조항을 폐지하였는데, 재벌은 이 틈새를 이용해서 계열사간 상호출자를 강화하여 구조조정 압력을 비켜가고 또 총수의 지배권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

재벌개혁 관련 입법조치 및 제도도입이 98년 상반기에 집중적으로 이루어졌다면, 정부가 재벌의 구조조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하는 것은 98년 후반기부터이다. 정부는 5대재벌에 대해서는 자율적 구조조정을, 나머지 30대

재벌에 대해서는 워크아웃 방식을 각각 택하고 있다. 정부는 5대재벌과 자율적 사업교환(빅딜), 재무구조 개선, 핵심사업 강화 등을 포함하는 구조조정에

대한 합의를 채택하고 98년말부터 분기별 점검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정부 정책이 30대재벌의 구조조정을 압박하여 일정한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대 재벌의 경우 그 성과는 그리 긍정적이지 않다.

첫째, 빅딜과 사업구조조정의 원래 목표가 재벌의 과잉중복투자의 해소였지만 실제 진행된 것을 보면, 부실기업 인수합병에 대출금 출자전환, 대출금 상환유예, 조세감면 등의 각종 지원만 있었지 5대재벌의 부실기업 퇴출은 거의 없었다. 그러므로 삼성자동차와 대우의 처리는 과잉중복시설의 해소라는 사업구조조정 측면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둘째, 5대재벌의 재무구조가 수치상으로는 분명히 개선되었다. 상호지보가

빠른 속도로 해소되고 있고 또 자본부채비율도 크게 개선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상호지보 해소의 대부분은 고이자 지불, 지불보증이 필요없는 우량채권으로의 전환 등에 의해서 이루어진 것이고, 따라서 상호지보에 의존하고 있던 재벌의 부실기업들의 부담이 금융기관 부담으로 전환된 것에 불과하며, 자본부채비율의 개선 역시 상호출자의 확대를 통한 가공자본의 창출, 자산재평가 등에 의한 것이지 부채 절대액이 크게 감소했거나 신규자본을 대량으로 유치했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5대재벌의 재무구조가 실질적으로 크게 개선되었다고 평가하기는 곤란하다.

셋째, 그간의 구조조정에도 불구하고 5대재벌의 경제력집중이 한층 강화되었다. 특히 현대그룹은 빅딜과정을 거치면서 자동차와 반도체 부문을 확장하였고, 또 사실상의 은행소유로까지 나아가 거대공룡 재벌이 되었는데, 이는 재벌개혁의 원래 목표와는 완전히 배반되는 결과이다. 그리고 5대재벌의 소유구조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으며 재벌총수의 그룹내 일인지배도 여전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점은 현재의 정책 담당자들의 머리 속에는 재벌개혁 이후 산업구조에 대한 청사진이 없다는 점이다. 재벌개혁 정책의 행간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재벌체제가 혁파된 이후의 경제구조는 시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대안적 산업구조에 대한 정책적 고려없이 무조건 시장에 내맡기는 것은 위험한 발상법이 아닐 수 없다./이만우 고려대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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