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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할머니들 동전헌금에 무안주던 교회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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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평생 잊지못할 일] 할머니들 동전헌금에 무안주던 교회장로

입력
1999.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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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십여 년전의 어느 일요일을 떠올릴 때 먼저 생각나는 건 아직 완공되지 않은 교회 건물이다. 본당 입구에 놓인 나무로 만든 헌금통도 떠오른다. 늙고 병들어 발걸음을 떼기도 힘든 할머니들이 저만치 골목에서 모습을 드러낸다.할머니들은 한결같이 검소하면서도 깨끗한 옷차림이다. 허옇게 센 머리를 곱게 잘 빗어 틀어올려서 비녀를 질렀다. 가까스로 계단을 올라선 할머니들은 헌금통 곁을 지나치는 순간, 손에 쥔 걸 슬며시 통 속으로 떨어뜨린다. 톡, 톡, 하고 동전에 헌금통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린다.

예배가 시작된다. 성가대는 화음을 이루어 노래를 부른다. 성도들도 경건한 목소리로 노래 부르고 성경을 읽는다. 그리고 설교가 이어진다. 지상이 아니라 천국에 돈을 저축하라는 내용이 여러 번 되풀이된다.

설교가 끝나면 분위기는 잠시 긴장이 풀어진다. 새로운 성도가 소개되고 그날 들어온 현금 내역이 공개된다. 회계 일을 맡은 장로가 앞으로 나온다. 딱딱하면서 시큰둥한 얼굴이다.

『오늘은 이 얘기를 꼭 하고 넘어가야겠습니다. 헌금통에 동전을 넣는 사람이 누굽니까? 동전은 좀 심하지 않습니까? 지금 우리가 성전을 짓느라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다 알지 않습니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그 날 할머니들이 겪었을 곤혹스러움을 더듬노라면, 마치 나 자신이 할머니들한테 큰 죄를 지은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다만 미안하고 부끄럽고 죄송스러운 마음에 낯이 후끈 달아오른다.

요즘 내 여동생은 오빠만 보면 다시 교회에 나가라며 극성이다. 십년 넘게 다녔던 교회를 그 시절에 왜 갑자기 그만두었느냐면서. 그럴 때 나는 슬며시 자리를 피하며 속으로 한마디 한다.

「교회 안에서 행여 돈 생각하지 말아라. 그곳에선 돈보다 귀한 걸 구해야겠지?」

/원재길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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