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위기로 치닫는 동티모르에 대한 국제사회의 적극개입이 시급해졌다. 동티모르는 유엔이 관리한 주민투표에서 독립의 길을 택했으나 인도네시아 잔류를 바라는 세력이 보복학살을 자행, 새로운 「킬링필드」가 되고 있다. 80만 동티모르인들은 300년만에 독립이 다가온 것을 기뻐할 겨를도 없이 살길을 찾아 헤매는 처지가 됐고, 유엔감시단과 외국취재진까지 내몰리고 있다.계엄선포에 이른 동티모르 사태의 1차적 책임은 인도네시아에 있다. 하비비대통령 정부는 동티모르 주민의 독립여망을 존중, 유엔 과도통치때까지 선량한 관리자 역할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군부는 독립반대파의 테러를 방조, 독립을 방해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의혹이 크다. 하비비정부는 수하르토의 30년 강권통치 체질에 젖은 군부에 대한 통제력이 없는 것으로 지적된다.
그러나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서도 인도네시아에 치안책임을 맡긴 미국과 영국 등 유엔 안보리 주도국에 있다는 비판이 거세다. 유엔 안보리는 폭력규탄 결의안을 채택하고 유엔 사무총장도 평화유지군 파견을 인도네시아와 협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안보리 주도국들은 실제 적극적 개입을 기피하고 있어, 사태가 조기에 진정될 것을 기대하기 어렵다.
동티모르의 수난사는 강대국이 주도한 식민제국주의와 냉전대결의 산물이다. 동티모르는 1974년 식민종주국 포르투갈의 우익독재가 붕괴하고 포르투갈군이 철수해 독립기회를 맞았으나 인도네시아가 무력합병했고, 서방은 이를 용인했다.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잃은 미국과 서방은 동티모르 공산화를 우려해 수하르토정권을 부추겼고, 20년간 동티모르인 20만명을 학살한 만행도 눈감았다.
동티모르의 불행에 책임이 큰 국제사회가 독립을 논의하게 된 것은 코소보 사태의 영향이다. 소수민족 보호를 앞세워 코소보에 무력개입한 미국과 나토국은 그 명분을 높일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적대세력이 대치하고 있는 동티모르의 치안책임을 인도네시아군에 맡긴 것은 인도네시아가 이 지역 세력균형에 긴요한 우방이기 때문이다. 강대국들이 국제관계에서 내세우는 「정의」의 기준이 이해관계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동티모르 독립은 소수민족을 질곡하고 국제관계를 그릇 지배한 과거의 유산을 청산하는 것이다. 따라서 강대국들은 이해타산과 말만 앞세우는 위선을 버리고,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지역국가들도 지역문제를 서구국가들에 내맡겨서는 안된다는 지적에 귀 기울여야 한다. 동티모르 사태는 국제사회가 진정한 정의를 구현할 의지가 있는가에 대한 시험대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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