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7일 오후 1시29분 권희로(權禧老·71)씨를 태운 일본항공(JAL) 957편이 「쿵」하는 소리와 함께 부산 강서구 김해국제공항 활주로에 안착하자 권씨는 눈물을 훔치며 낮은 신음소리를 토해 냈다.
이로써 권씨는 『고국에서 편하게 살아라』고 말한 어머니 박득숙(朴得淑)씨의 유언대로 마침내 고국에 무사 귀환했다. 드라마틱했던 그의 「석방투쟁」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수감생활 31년6개월(1만1,505일)만이었다.
석방을 이틀 앞둔 5일 일본 도쿄 후추(府中)형무소에서 나리타(成田)공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지바(千葉)형무소에 극비리에 이감됐던 권씨는 7일 오전 3시50분께 야음을 틈타 교도관 20여명의 계호를 받으며 호송버스에 태워져 육중한 철문을 뒤로 한채 교도소를 빠져나왔다.
채 동이 트지 않은 오전 5시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나리타공항에 도착한 권씨는 공항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71년간의 고단했던 일본생활을 마감하고 어머니의 고향 부산에서 시작될 새 삶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권씨는 오전 9시5분께 박삼중(朴三中)스님 일행이 태극기로 둘러싼 어머니 의 유골을 건네자 10여분간 목놓아 울면서 『어머니, 불효자를 용서하세요』라고 탄식했다. 이어 삼중스님이 『이렇게 살아 고향땅을 밟게 된 것을 보고 어머니께서 저승에서 나마 편히 눈을 감을 것』이라고 위로하며 생전 어머니가 손수 지은 한복을 건네자 권씨는 옷에 얼굴을 파묻고 다시 오열했다.
권씨는 삼중스님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자』며 방탄조끼를 건네자 『한국민의 체면을 생각해 입지 않겠다』고 단호히 거절했다.
권씨는 오전 10시15분께 일체의 출국절차를 생략한 채 일본 형무소 관계자 20여명의 경호를 받으며 출국장을 빠져나가 대기하고 있던 보도진의 촬영에 잠시 응한 뒤 바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짙은 회색 양복, 초코렛색 구두, 왼손엔 염주, 오른손엔 금장시계를 착용하고 금테안경을 낀 권씨는 기내에서 사진촬영 플래시가 터지고 취재진이 몰려 들었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항공기가 김해공항 상공에 이르렀을때 삼중스님이 『여기가 부산이다』고 말하자 권씨는 어머니의 유골을 창밖으로 들어보이며 『어머니 여기가 고향 부산입니다』라며 다시 흐느꼈다.
부산=목상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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