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속으로 일본이 성큼 들어왔다. 국립극단이 최초로 일본의 연극을 공연하고, 일본어 연극이 각색을 거쳐 우리말 작품으로 변신한다. 모두 역사로부터 멀리 비껴난 현대물이다.국립극단의 「친구들(友達)」. 현대 일본의 대표적 극작가 아베 고보(安部公房)가 67년에 쓴 동명의 희곡을 우리 연극으로 만들었다.
결혼을 앞둔 독신의 샐러리맨에게 처음 보는 가족 9명이 들이닥친다. 그들은 이웃사랑을 내세우며 남자의 아파트를 휘젓는다. 얼떨결에 사내는 경찰을 부르려는 등 갖가지 시도를 해보지만 막무가내. 저항할 수단을 잃어버린 사내는 결국 그들에게 감금 아닌 감금을 당하고 만다. 휴머니즘이란 미명 아래 교묘한 폭력이 늘어가는 현대사회를 우화적으로 그렸다.
3월 「신극협의회」와 「베세토위원회」 등 일본의 대표적 연극단체가 국립극단측에 한국내 상연 검토를 적극 의뢰함으로써 성사된 공연이다. 원폭을 소재로 한 「마리아의 목」 등 일본적 특수성이 두드러지는 작품 6개와는 달리, 가장 보편성이 큰 작품으로 인정받아 한국 공연이 결정됐다. 기모노 등 「왜색」이 없다는 사실이 발탁의 가장 큰 이유.
극단측은 『15명의 총출연자 중 적어도 10명 이상은 항상 무대에 출연해 연기 앙상블을 펼쳐야 하는 작품의 특성상, 수준급의 앙상블을 자연스레 소화해 낼 수 있는 국립극단이 제격』이라고도 덧붙인다. 많은 배우들이 한꺼번에 등장해 제각각 뭔가를 하지만 전체적으로 시너지를 이뤄, 고른 연기력이 특성인 국립극단의 진면목이 발휘된다는 설명이다.
극단 산울림의 대표 임영웅씨가 14년만에 다시 국립극단을 지휘, 특유의 섬세한 연출력이 국립극단과 어떻게 조화될 지 관심을 끌고 있다. 서희승 김재건 권복순 등 국립의 간판배우, 김석훈 한희정 등 젊은 얼굴들의 앙상블이 기대된다. 15~24일 국립중앙극장 소극장, 월~금 오후 4시 7시 30분.
극단 은행나무의 「영상도시」. 교포 극작가 정의신이 90년 일본에서 초연한 이래, 국내에서는 첫 상연된다. 「시네마 천국」을 패러디한 원작을 또 패러디해 영화이야기를 연극이야기로 치환했다. 극작가의 꿈을 위해 싸우는 한 사내의 연극 지키기다. 쌓여가는 적자를 이기지 못해 공연장의 문을 닫지만 『마지막 연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주인공은 말한다. 경제난에 처한 우리 연극계의 모습이라는 설명.
가부키(歌舞伎)나 노(能) 등 원작 속의 일본 전통 연희적 요소들을 원작자의 승낙을 얻어 삭제하고, 「왜 연극을 하는가」라는 보편적 문제에 초점을 맞췄다. 원제목 「映像 도시」를 「影像도시」로 바꾼 것도 변화. 윤우영 연출, 김병순 조경숙 등 출연, 25~10월 31일 은행나무극장. 화~금 오후 7시 30분, 토 오후 4시 30분, 7시 30분, 일 오후 3·6시. (02)3672_6051
장병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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