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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취재파일] 나카타의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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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취재파일] 나카타의 승리

입력
1999.09.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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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축구의 승리는 곧 나카타(22·페루자)의 승리였다.「하얀마술사」트루시에 감독(44)이 왜 그토록 나카타(22·페루자)를 찾았는지 7일 한·일전에서야 드러났다. 바로 일본축구의 필승해법이 나카타에 있었기때문이다.

경기전 일본 언론들은 나카타를 「1인 3역」 즉 포워드, 중원사령관, 감독대행에 비유했다. 나카타는 「문제는 컴비네이션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며 낯선 후배들과 호흡을 맞추는 것이 한국전 승리의 관건이라고 했었다.

폭넓은 시야를 바탕으로 2선에서 한번에 찔러주는 패스에 한국 수비진은 허둥댔고 히라세와 후쿠다를 번번이 놓치며 잇달아 실점했다. 나카타라는 「카리스마」를 지닌 선배가 그라운드에서 함께 뛴다는 사실은 일본선수들로 하여금 자신감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

일본이 뽑아낸 대부분의 골은 직·간접으로 나카타에서 시작됐다. 나카타의 프리킥에서 시작된 일본의 공격은 후쿠다의 발에 걸리며 선제골을 뽑았고 두번째 골은 심재원이 걷어낸 공이 나카타의 등에 맞고 히라세 앞에 떨어지며 골을 주웠다. 이어 4번째 골도 나카타의 패스를 받은 엔도가 중거리 슈팅으로 승부에 쐐기를 박는 골로 연결됐다.

한국의 패인은 수비진의 어설픈 볼처리도 문제였지만 역시 게임메이커라는 리더의 부족이었다. 97년초 프랑스월드컵을 앞두고 차범근사단이 결성되면서 찾기 시작한 게임메이커 찾기가 3년이 지난 지금도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셈이다. 54년 3월 도쿄에서 스위스월드컵예선으로 처음 한일전(한국 5-1 승)이 시작된이래 45년만에 참패를 당하는 치욕의 순간이었다.

사족 하나. 31년간 옥살이를 하고 7일 후추형무소에서 풀려난 김희로씨가 고국 부산에서 처음 TV를 시청한 것이 일본에 참패를 당하는 장면이었다면 그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도쿄(일본)=여동은기자

deyu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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