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서 처음으로 내가 읽고 싶은 책, 박경리의 「토지」 1, 2권을 빌렸다. 1주일에 한 번 수요일이면 아이들 만화영화도 보여줄 겸 책도 읽을 겸 도시락을 싸 들고 도서관으로 나들이하는 우리 삼모자.초등학교 1학년, 여섯살난 아이들에게 선언을 했다. 『이제부턴 엄마도 엄마가 보고싶은 책 빌릴거다』 『에이, 그럼 우리 책은 조금밖에 못 빌리잖아』하며 입을 삐죽거리는 아이를 못본 체 했다.
며칠전 혼자 찍은 사진이 필요해서 아이들 사진첩을 뒤척였다. 큰 아이는 4권째, 작은 아이는 2권째 사진이 꽂혀있는데 아무리 찾아도 나의 독사진은 한장도 없었다. 그때 뇌리를 스치는 생각. 『어머, 그동안 「나」는 없었단 말인가』
결혼초 아이가 없었을 땐 그래도 나의 취미를 살려 수직공예며 붓글씨를 배우면서, 모여서 잡담나누는 동네 아주머니들을 한심해하고 나는 저렇게 되지 않으리라 다짐을 했다.
그리고 아이 치다꺼리에 허덕이는 친구에게도 『얘, 너무 애하고 살림에만 매이지 말고 자신에게도 투자 좀 해. 취미생활도 하고 살란 말이야』라고 말했다.
『얘가 모르는 소리 하네. 취미생활할 돈도, 시간도 없지만 있다해도 애들 가르쳐야지. 요즘 애들 배울 게 얼마나 많은데. 어림없는 소리』하며 서글퍼하던 친구의 말은, 두 아이 키우는 내 처지와 똑 맞는 현실이 됐다.
먹는 것, 입는 것, 가르치는 것 모두 아이 위주로, 아이 우선으로 하다보니 자연히 나는 잊혀진 존재가 돼버린 것이다. 억울함이나 후회보다 당연함이 앞서는 것은 모든 엄마들의 본성이 아닐까.
그렇지만 이제 내가 서 있는 현실에서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나의 자리도 마련하고 가꾸어가면서 활력소를 얻으리라 다짐해본다.
/황정미·인천 남구 주안2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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