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이 혁명보다 더 어렵다는 말은 새삼스런 얘기가 아니다. 혁명은 「채찍」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지만, 개혁이 성공하려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없이는 불가능하다. 인간은 본래 채찍 앞에서는 쉽게 타협한다. 하지만 재량이 주어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제 몫 챙기기에 급급하다. 혁명이 잘 훈련된 셰퍼드 열마리를 몰고 가는 여정이라면, 전혀 훈련안된 돼지새끼 열마리를 몰고가는 형국이 개혁이라고 한다면 좀 심한 비유일까.■개혁은 이처럼 어렵고도 긴 여정이다. 어느 정권, 어느 세력만이 독차지 할 단발성 사안이 아니다. 우리가 숨쉬고 살아가는 한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과제다. 그런데 역대정권이나 심지어 현정부까지도 자신들의 임기내 무엇인가 족적을 남기겠다고 발버둥치는 모습을 보면 안타깝다. 발버둥 치면 칠수록 시행착오만 남기게 되는 것이 역사에서 얻은 경험인데….
■재벌개혁도 그렇고 정치개혁도 그렇다. 정부의 강한 드라이브로 재벌은 마지못해 따라가는 시늉이라도 한다. 세무사찰등 채찍이 무서워 그냥 엎드린 것이지, 언제 다시 고개를 치켜들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권은 그나마도 요지부동이다. 숫제 「내 배 째라」식이다. 대선공약인 인사청문회는 아직도 관련법 미비를 구실로 새 대법원장과 감사원장은 무사통과 조짐이다. 그러면서도 선거구제 개편만큼은 밀어붙이려 한다. 명분이 좋아도 당리당략으로 보인다.
■규제개혁이 개선이 아닌 개악으로 끝난 사례도 없지 않다. 우리가 혁파를 원한 것은 불필요한 규제였지, 사회의 건전한 합의까지 손보자는 것은 아니다. 각종 인·허가에 대한 재량권 남용행위를 막자는 것이지, 특급호텔 호화결혼식을 못해 안달한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이런 「끼워넣기」가 성행하면 아무리 정부가 개혁을 강조해 본들 신뢰를 얻기 어렵다. 적어도 할 일과 해서는 안될 일 정도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이 탄력을 받기 위해서이다.
/노진환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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