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혁명 상황, 진짜 혁명이 진행되고 있다. 바야흐로 재벌분해를 향한 정권의 힘겨운 싸움이 시작된 것이다. 성장의 주역이자 외환위기의 주범, 한강 기적의 견인차이자 한국자본주의의 제왕, 정부와 금융계를 주물러온 경제독재자, 빈곤탈출의 꿈을 실현한 시장개척의 공격수, 그리고 막대한 외화차입으로 거식증(巨食症)을 달랬던 아시아의 거인 등등의 화려한 수식어를 한 몸에 달고 있는 재벌이 통치자로부터 최후통첩을 받았다.김대중대통령은 최근의 시장구조가 선단식 그룹형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기에 재벌은 이제 단독기업으로 거듭나야한다고 못박았다. 정권이 바뀌지 않는 한, 최후통첩은 어떤 식으로든 발효될 것이다. 5대 재벌에 대한 국세청의 목조르기가 시작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자본의 힘이 권력형태를 좌우하는 자본주의사회에서 자본축적구조를 전환하라는 명령은 역사상 나타난 그 어떤 것보다도 더 기세등등한 혁명이다. 더욱이 재벌을 전방배치하여 고도성장을 구가해왔던 한국이기에 재벌분해를 명한 국가적 결정은 혁명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5+3원칙」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꿰뚫어본 사람이라면 「해체냐 개혁이냐」를 둘러싼 논쟁은 소모적임을 눈치챌 것이다. IMF위기관리 때 천명되었던 5원칙이 재무구조와 경영투명성을 개선하라는 다소 부드러운 권유였다면 이번에 부가된 3원칙은 순환출자제한과 금융지배불가를 통해 평균 15%정도의 자기자본으로 그룹사 40%의 재산권을 장악해온 총수체제의 허구를 끝장낸다는 강수(强手)다.
전문경영인의 종속성과 재산의 친자대물림을 확대 재생산해온 한국 특유의 「가족자본주의」를 마감하려는 것이다. 이는 한국자본주의의 질적 전환을 넘어 재산증식의 불합리성과 소득불평등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한꺼번에 해소하려는 그야말로 역사적 기획이다. 그런데 군사쿠테타 이외에 제도를 통한 혁명을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우리로서는 불안감을 감출 수 없다. 그 불안감은 세 가지 불확실성으로부터 나온다.
첫째, 선단식 그룹형태를 분해하고 난 뒤 대안적 패러다임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세계적 경제평론가인 노만 맥래(Macrae)는 75년 「태평양시대의 도래」라는 글에서 일본경제력의 원천이 함대식 기업구조에 숨어있음을 주목하라고 서방세계에 경고했다. 뉴욕타임스지는 80년대 중반 재벌을 앞세운 한국이 미국대륙에 상륙했다고 대서특필했다. 모두 함대식 거대기업의 잠재력에 긴장하라는 메시지였다.
그런데 이제는 독자기업이라. 시장구조가 바뀐 것은 확실하지만 독자기업이 21세기를 제패한다고 누구도 보장할 수 없다는 점이 여전히 난감하다. 둘째, 재벌이 없는 자리를 채울 유수한 독자기업이 적어도 당분간은 궁하다. IBM 포드 히다치 볼보와 같은 세계적 기업과 겨눌 수 있는 독자기업이 태어날 때까지 재벌의 공백을 누가 메울 것인가?
셋째, 공백기가 연장되어 경제침체가 촉발되면 과연 누가 그 책임을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고속성장에 길들여진 우리 국민들은 단기간이라도 경기침체를 스스로 수용할 준비가 안되었다. 경제위기마다 국민들은 고통을 달래줄 제물(祭物)을 원했다. 만의 하나, 혁명비용이 너무 커서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면 누가 스스로 제물이 되기를 자처할까? 그러나 할 것은 해야 한다.
여기에 집권당의 고민이 있다. 혁명의 성패와 관계없이 자본과의 샅바싸움에서 손해보는 쪽은 항상 집권당이다. 다행히 성공한다면 집권당은 성공의 비용, 즉 단기적 경제위기의 대가를 치뤄야 하고 실패한다면 말할 것도 없이 정권을 잃는다.
재벌분해가 고속성장의 뼈아픈 대가이자 역사적 과제라면 집권당은 정권유지와 상관없이 역사 앞에 장렬하게 산화할 각오를 하고 있는가? 국민들은 예상되는 경제적 고통에 아랑곳 않고 집권당의 투지를 변함없이 지지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혁명은 더 큰 것을 위해 항상 희생과 과감한 선택을 요구하는 법.
/송호근· 서울대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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