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몰리나「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을 어긴 이적(利敵) 도서로 낙인 찍힐 것인가?
국보법 위반 시비에 휘말렸던 「태백산맥」의 작가 조정래씨가 이번 주말께 검찰에 나가 조사받기로 하면서 이 소설의 이적성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100쇄를 넘긴 베스트셀러며 해방 이후 좌·우 갈등을 가장 명징하게 보여준 소설로 평가받는 「태백산맥」은 86년 출간 이후 10여 년 동안 우익 인사들의 끊임없는 표적이었다.
사태가 사법처리 차원으로 번진 것은 94년. 이승만 대통령의 양아들 이인수 명지대 교수와 한국전쟁참전총연맹 등 8개 단체가 조씨를 국보법 위반과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소·고발하면서부터다. 경찰은 「태백산맥」이 이승만 정권을 친미 괴뢰정부로 빨치산을 인민해방전사로 한국전쟁을 조국해방전쟁으로 표현한 부분 등이 이적성이 짙다는 의견과 함께 사건을 검찰로 보냈고, 검찰은 이제까지 사건처리를 미뤄왔다. 검찰 역시 경찰과 판단이 크게 다르지 않고, 불구속 기소유예 등을 검토했다는 이야기가 그동안 파다했었다.
검찰은 조씨를 조사하고, 이어 고소인 측이 내세우는 여순반란과 한국전쟁 목격자 2∼3명의 이야기를 더 들은 뒤 사건을 되도록 빨리 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검은 90년 9월 「태백산맥」을 이적표현물로 분류했고 지금까지도 해제하지 않은 상태다. 따라서 이번 검찰의 조씨 소환을 통한 「태백산맥」 재조사는 김대중 정권의 언론·출판에 대한 공안 개념과 방향을 보여주는 좋은 잣대가 될 것으로 짐작되고 있다.
94년 경찰 조사에 한 차례 응하고 소환을 거부한 조씨는 그동안 누차 언론을 통해 『문학작품을 특정집단이 이익을 내세워 곡해하는 것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고소·고발인들을 비판했다. 독일에 나가 있는 조씨는 19일께 귀국하면서 바로 검찰에 나갈 것으로 보인다.
검찰 주변에서는 검찰이 조씨를 불구속 기소유예할 가능성이 가장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아무리 공안 개념이 느슨해졌다 해도 소설에 틀림없이 등장하는 괴뢰정부, 인민해방전사, 조국해방전쟁 등의 표현들을 모두 용인하기는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혐의」 처리 가능성을 점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어쨌든 「태백산맥」은 소설 내용 뿐 아니라 책의 운명까지도 우리 현대사의 일그러진 모습을 뚜렷하게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남을 전망이다.
김범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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