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재벌개혁을 하면서 이렇게 어려울 줄 몰랐다. 내 평생 살아오면서 이렇게 힘들었던 적이 없었다』김대중(金大中)대통령이 4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털어놓은 재벌개혁에 대한 소회다. 박준영(朴晙瑩)대변인이 『김대통령이 깊게 말했다』고 전한데서 드러나듯 비장함이 느껴질 정도다. 김대통령은 휴일인 5일 박대변인을 불러 발언 내용의 공개를 이례적으로 지시했다. 작심한 발언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김대통령의 메시지는 한마디로 재벌 개혁이 물러설 수 없는「일생 일대의 과업」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재벌개혁을 하겠다』 『외환위기 극복은 나라가 안망했다는 것일 뿐이다』는 등의 강한 표현도 있었다. 이는 최근 재벌개혁을 둘러싸고 고개를 드는 내외의 반발기류를 제어하고, 특히 여권 내부에서 나오는 다른 목소리를 겨냥했다고 볼 수 있다. 박대변인도 『위기가 어느 정도 극복됐다고 해이해지는 정부 분위기가 있고 재벌개혁에 대한 우려도 있어 확신을 갖고 이를 추진하라는 의미』라고 해석했다.
실제 최근 현대증권 주가조작 수사, 재벌 변칙증여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발표가 있자 재계에서는 『재벌개혁이 경기회복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는 반론이 제기됐다. 이 논리는 과거 재벌개혁이 좌초할 때처럼 여권과 정부내부에서 반향을 불러일으켰고 일각에서는 『재벌개혁이 과연 성공할수 있을까』라는 성급한 회의론도 나왔다.
김대통령은 재벌개혁에 대한 저항을 국가의 미래를 어둡게하는 반개혁적 흐름으로 보고 이 시점에서 이를 확실히 저지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아울러 수석비서관들에게 『역사적 소명의식과 굳은 결심을 갖고 임해달라』고 당부, 내부 전열을 다지기도 했다. 상황이나 주변의 도전 때문에 재벌개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언명을 한 셈이다.
김대통령의 재벌개혁론은 단순한 정책에 그치지 않고 사실상 통치신념에 가깝다. 재벌개혁 없이는 국가경쟁력도, 나라의 미래도 없으며 21세기의 치열한 국제경쟁에서는 살아날 수 없다는게 김대통령의 소신이다. 김대통령은 백년전 구한말 개화기에 조선 지도층의 판단착오가 우리 민족을 도탄에 빠뜨렸다는 예까지 들고 있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들은 『IMF가 왜 왔는지를 상기하라』면서 『재벌개혁은 불과 1년반전의 현실로부터 나온 교훈이자 당위』라고 강조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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