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의 임기를 3선(三選)으로 제한해 버리면 좋지 않을까. 나라 일이 잘 안 풀리는 이유가 「정치 때문에…」라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해본다.몇 해전 어느 재벌회장이 『우리 나라 기업은 2류는 되지만 정치는 3류』라고 말해서 적잖은 파문과 화제를 뿌렸던 적이 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 되는 경제의 발목을 정치가 잡아 늘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IMF외환위기로 기업이 2류라는 것은 허풍으로 판명됐지만 그렇다고 정치가 3류에서 탈피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4류로 추락했다고 해도 변명할 수가 없다. 그 정치가 자기 구조개선을 못하면서 기업구조를 개선하겠다고 한몫 거들고 있으니 국민들이 보통 어지러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욕을 먹는 정치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우리 국민 4천만이 모두 정치에 박사급이 될 정도다. 신문 잡지의 컬럼은 온통 정치 이슈이고 수많은 정치학자들이, 평론가들이 비판과 대안을 쏟아 놓는다. 심지어 국회의원마저도 이러면 안 된다고 한국정치를 질타한다. 그러나 진전되는 것은 없다. 이렇게 정치인이 욕먹는 나라도 드물지만, 선거철만 되면 그들이 척척 재선되어 의사당으로 돌아오는 나라도 이 땅의 정치풍경이다.
국회의원의 임기를 재선(再選)이나 길어야 3선(三選)으로 제한해 버리면 우리 정치가 지금 보다는 훨씬 달라지지 않을까. 대통령이 5년 임기로 끝나는 것처럼 국회의원도 길어야 12년만 국민의 대표노릇을 하게 하는 것이다. 국회의원이 3선정도면 충분하다는 이유는 현실정치가 설명해주고 있다.
첫째, 툭하면 경륜을 말하는데 경륜있는(?) 다선 의원들이 건설적인 입법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을 구경하기가 어렵다. 감투싸움, 줄서기, 이권챙기기에 익숙한 인상만을 주고 있다. 정치불신의 책임이 바로 다선 의원들에게 있다.
둘째, 21세기는 사회변화가 빠르고 전문화추세가 가속화한다. 이런 사회변화에서 12년이면 과거 30년에 맞먹는 시간이다. 3선으로 제한하면 정치의 신진대사가 빨라지고 그 만큼 정치는 역동성을 갖게 된다. 억지로 세대교체를 외치지 않아도 되고 젊은 피를 수혈한다고 악을 쓸 필요가 없다. 그리고 정치를 제로섬 게임의 극한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완화할 수 있다.
셋째, 봉건적 보스정치를 종식시키고 정당을 보다 민주적으로 변모시킬 것이다. 다선(多選)을 허용하지 않으면 출중한 정치지도자가 나올 수 없다고 할지 모르나 3선정도면 지도력의 자질은 판명된다고 본다. 케네디 미국대통령도 재선의원으로 대통령후보가 되었다. 또 대통령후보가 꼭 현역 국회의원이라야만 할 이유도 없다. 어찌 보면 국민이 정치를 개혁할 수 있는 매력적인 아이디어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국회의원 임기를 3선으로 제한하려면 헌법을 개정해야 한다. 우리 헌법엔 국민이 직접 헌법개정안을 발의 할 수 있는 국민발안 제도가 없다. 대통령과 국회만이 헌법개정을 발의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렇다고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정말 정치판을 국민이 고쳐야되겠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시민의식이 살아있다면 대통령이나 국회를 움직일 수 있다.
의원임기 제한은 90년대 미국의 여러 주에서 주민(州民)발안에 의한 투표로 채택되었다. 위헌논쟁이 붙는 등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정치권의 고인 물을 퍼내는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으로 평가받는 것이 사실이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생각하면 국민공감대가 높을 것이다.
4천만 국민이 『정치가 개판』이라고 욕해봐야 소용없다. 국민이 행동으로 그들을 바꿔놓아야 한다. 진정 시민단체들이 정치개혁을 원한다면 이 거대한 프로젝트를 한번 추진할만 하지 않는가.
/김수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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