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티모르인은 독립을 택했다. 『투표하면 죽이겠다』는 친인도네시아 민병대의 위협도 독립과 자존을 갈망해온 그들의 꿈을 꺾지못했다. 국제사회의 철저한 외면 속에서 25년간 주민의 3분의1에 가까운 20여만명이 숨지며 저항을 벌여온 동티모르인의 독립 의지는 이제 국제적으로 분명히 확인됐다.험난한 앞날 하지만 이날 투표결과가 동티모르의 미래를 온전히 보장해주고 있지는 않다. 동티모르인들은 무엇보다 독립파와 자치파간의 오랜 적대감과 원한을 스스로 해소해야한다. 이는 어쩌면 독립파 지도자 구스마오의 표현대로 「주민투표후 벌어질 진정한 독립 투쟁」일 수도 있다.
친인도네시아 민병대들은 오래전부터 『동티모르가 독립의 길을 간다면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공언해왔다. 이미 딜리 서쪽 말리아나 등 상당지역을 무력으로 장악한 이들이 독립파와 무고한 양민을 공격, 내전을 방불하는 무정부 상황이 연출될 수도 있다.
특히 오는 11월 인도네시아 국민평의회가 법적으로 동티모르 독립을 인정해줄때까지의 기간이 가장 불안하다. 주민투표를 인도네시아의 패배로 간주하고 있는 인도네시아 군부가 과연 1만여명 민병대의 무장해제에 선뜻 나설 것인가도 의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투표결과를 수용, 군과 경찰을 증파해 치안유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이 역시 아직은 확실치않다. 여기에다 지난 총선에서 다수의석을 차지한 메가와티 마저 공공연히 독립반대 의사를 밝히는 등 인도네시아 의회의 헌법개정 과정도 순탄치않을 전망이다.
경제적 독립 25만여명의 인도네시아인들이 떠나면 동티모르는 어쩌면 경제적 암흑지대가 될 수 있다. 동티모르에 있는 4개의 대형발전소를 가동할 능력도 없고 수십개의 은행 중 동티모르 출신 매니저는 단 2명에 불과하다. 공무원을 비롯한 의사 교사 등 동티모르를 이끌어온 인도네시아인들이 앞다투어 탈출하고 있기때문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동티모르 경제를 인도네시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데 15~20년은 걸릴 것으로 본다. 이곳은 97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인도네시아의 37%에 불과하다. 90% 이상의 주민이 양철지붕의 오두막집에서 거주하는 절대 빈민층인데다 절반 이상이 문맹이다.
물론 동티모르인들은 풍부한 석유(매장량 3,000만 배럴)와 천연가스(960억㎥) 등 자원과 풍부한 관광자원을 효율적으로 개발하면 자립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매장된 자원을 경제적으로 채굴하기까지는 10년 이상 걸리고 파내더라도 서구 열강이 눈독을 들이고 있어 얼마나 동티모르인의 손에 이익이 돌아갈지 의문이다. 또 치안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발리같은 관광지를 개발할 가능성도 의문이다.
국제사회의 지원 한계 주민투표가 마무리되기까지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인도네시아가 자치협상에 나오도록 만들고나서 결국 주민투표를 실시한 유엔은 앞으로 3~5년간 동티모르 독립을 위한 전과정을 주도하게 된다.
하지만 유엔은 모든 안보리 이사국들의 지지를 모으지못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투표실시후 민병대의 할거로 최소한 4명의 유엔직원이 숨지고 6명이 실종되자 유엔 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하자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논의 수준을 벗어나지못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로선 개입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고 중국 등도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접국인 호주와 뉴질랜드도 미국의 명확한 지지없이는 개입하지않겠다는 입장이다. 결국 유엔은 당분간 모든 책임을 인도네시아에 전가해야할 형편이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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