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바레가 「밀실」이라면 혼외 부킹족들이 몰려드는 나이트클럽은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제비족과 유부녀의 불륜, 어두컴컴한 실내,지르박과 블루스의 착 가라앉은 리듬 속에 감추어진 욕망의 노골성 등 카바레가 건전한 주부들의 발길을 차단했던 「밀실」이라는 부정적 이미지였다면, 나이트클럽은 공개되고 부담없는 「열린 놀이공간」이라는 얼굴을 하고 있다.
밤 9시30분 일산. 최근 개업해 요즘 한참 「물 좋은 곳」으로 소문난 일산의 A 나이트클럽에 들어서자 그런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인조 대리석으로 치장된 A 나이트클럽은 실내가 500여평 규모. 건물 꼭대기의 두 층을 한 층으로 튼 듯한 높은 천장, 넓은 객석, 정교한 무대와 산뜻한 플로어를 보면 평범한 주부들이라도 아무런 부담없이 출입할 수 있는 건강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겉보기와 달리 취재진이 혼외부킹의 소문을 사실로 확인하는데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슴을 쿵쿵 울릴 정도로 볼륨을 최대한 높인 댄스음악과 사이키 조명 속을 헤치고 자리를 찾아가니 이미 100여개가 넘는 테이블은 친구들끼리 삼삼오오 찾아온 30~40대 주부들과 비슷한 연령의 남성들로 거의 차 있다.
양주 큰 것 한 병과 과일안주 한 개를 주문 한 뒤 가격을 확인해보니 10만원 남짓. 이 업소의 한 종업원은 『주부들의 부담도 덜 겸, IMF를 계기로 박리다매(薄利多賣)식 영업으로 전환했다』고 설명했다.
이 업소와 비슷한 화정의 한 나이트클럽의 입구에 「친절, 인사, 부킹!」이라는 다소 엉뚱하고 희극적인 사훈(社訓)이 내걸려 있었다.
취재진중 한명이 『부킹좀 해 보라』고 부탁하자 한 종업원은 익숙하게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를 하면서 『사장님, 걱정 마십시오. 피크타임에 오셨습니다.
멋진 사모님들로 올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피크타임」이란 주부 손님이 많아서 부킹이 가장 쉽게 이루어지는 시간.
남편이 출장을 갔거나 당직일 경우는 밤샘이 가능하지만 대부분은 밤 12시 전에는 귀가해야한다. 따라서 「피크타임」은 밤 10시부터 12시 사이.
이미 부킹이 이루어져 합석한 테이블이 상당수이지만 아직 마음에 드는 짝을 찾지 못한 남녀 팀들도 많았다. 팀별로 서로 「찍고」 「찍히는」 탐색전이 어둠속에서 치열하게 벌어지는 중이었다.
눈에 띄는 팀이 있을 경우 종업원을 불러 찍어주면 곧바로 주선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 남자들은 「찍는」 수고를 할 필요조차 없다.
자기 테이블에 앉은 남자 손님들에게 부킹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종업원들은 주부들의 손목을 끌다시피하며 이 테이블, 저 테이블을 바쁘게 전전한다. 주부들도 싫은 눈치가 아니다.
10분 정도가 지나자 종업원의 소개로 취재진은 3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들과 합석했다. 이들은 일산에 산다며 남편들이 출장가 놀러왔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사모님」 「선생님」 어쩌구 하던 상호간의 처음 호칭은 이내 「○○씨」를 거쳐 「○○야」하는 식으로 스스럼없이 바뀐다. 밤 12시께까지 놀다가 2차는 노래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남이나 인덕원 등에서는 나이트클럽을 나가 근처의 노래방으로 향하지만 A 나이트클럽에는 아예 노래방 시설을 갖춘 룸이 갖춰져 있다.
「애모」와 「빗 속의 여인」, 「부산갈매기」와 「남행열차」가 오고가다 「386의 찬가」인 「아침 이슬」을 합창했다.
『야! 너희들 여기 자주 오냐?』고 짐짓 물었다. 『아냐, 가끔 와. 나쁜 짓 하는 거 아닌데 뭐』라고 답했다. 『밤에 나오면 애들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다. 『이제 다 컸는데 뭘. 애들 재우고 11시에 나온거야』라고 말했다. 『3차 갈래?』 은근히 물었다.
『우리, 처음이잖아』라며 『다음에 연락해』라고 했다. 『언제?』 『평일 날 낮, 아무때나 괜찮아』라고 답했다. 쪽지를 교환했다.
새벽 3시 나이트클럽을 빠져 나오자 혼외부킹족 가운데 눈이 맞은 짝들이 주변의 시선을 피해가며 인근 호텔로 들어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새벽인데도 밖은 후텁지근한 열기로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기획취재팀
이장훈차장(사회부)
하종오기자(문화부)
장인철기자(경제부)
장래준기자(체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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