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때리기」인가 .미 백악관은 2일 국제통화기금(IMF)이 러시아에 제공한 차관의 전용(轉用) 의혹에 대한 감사가 끝날 때까지 대러시아 추가 차관지원을 중단한다고 밝혔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 등 러시아 권력층의 정치 비자금설, 이와 연계된 IMF 자금 유용설에 대한 의혹이 해명될 때 까지 「돈줄」을 막겠다는 것이다.
IMF 차관은 러시아에 있어 사활적 생명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규 차관이 중단될 경우 외환 보유고가 다시 바닥에 이른 러시아는 올연말까지 자국의 한달 세입보다 많은 12억달러를 예산에서 끌어와 IMF에 갚아야 한다.
IMF 스스로 러시아의 차관 해외유출을 부인하고 의혹의 상당부분이 베일에 가려있는 상황에서 미국이 이처럼 강하게 대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존 포데스타 백악관 대변인의 표현대로 원조금이 『개혁적인 작업에 쓰이길 바라는 때문』이라는 순수한 이유도 있겠지만, 미국이 이번 부패 사건을 계기로 현 러시아 정권과의 결별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네자비스마야 가제타는 미국이 옐친 대통령이 공산주의로부터 러시아를 보호해 줄 유일한 방패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새판 짜기」에 나섰다고 해석했다. 즉, 많은 부분에서 서방과 대립해온 옐친을 「용도 폐기」하는 대신 내년 7월 대선에서 탄생할 새로운 세력에 대비한 「정략적」 조치라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을 배경으로 보면 이번 파문의 가장 큰 수혜자는 현재 대선 레이스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 총리를 위시한 중도파이다. 옐친 주변 세력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의 도덕적 치명타를 입었고 의회 다수파인 공산당은 이미 스스로 정권을 창출할 능력을 상실했다.
미국의 「러시아 흔들기」는 또 최근 다시 활발해진 러시아와 중국의 밀월관계를 견제하는 한편, 3단계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 3)등 현안을 수월하게 풀어나가기 위한 전략적 포석으로도 보인다. IMF 자금으로 대변되는 적극적 「참여(Engagement)」로 러시아 순치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대러시아 공세는 대선정국에 들어간 미국내 정세와 맞물려 강화하는 분위기다. 정권 탈환을 노리는 공화당은 미·러 관계개선위원회 공동의장인 앨 고어 부통령을 겨냥, 민주당 정부가 부패국가 러시아에 대책없이 많은 돈을 지원했다고 비난하며 대러 정책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
『이번 스캔들은 미국과 러시아에서 개시된 선거전에서 기인한 것』이라며 『러시아가 세계 열강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특정 집단의 기도』라는 이고르 이바노프 러시아 외무장관의 지적이 궁색한 변명만은 아닌 듯 싶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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