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키 마틴, 제니퍼 로페즈, 엔리케 이글레시아스. 이들의 공통점은 라틴계 아티스트로 라틴팝으로 최근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다는 것이다.최근 미국 음악계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 화이트 팝(백인이 부른 이지 리스닝 계열의 팝)이 퇴조하고 월드 뮤직(영어권 음악을 제외한 음악)이 크게 부상하고 있다는 점. 「혜성」처럼 나타나 머라이어 캐리의 뒤를 이을 재목감으로 꼽히는 크리스티나 아길레라 역시 미국에서 출생하기는 했으나, 선대가 라틴계이고 음악 역시 이런 색채가 강하다.
월드 뮤직이라고 다 통하는 것은 아니다. 여기엔 현대적 문법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라틴음악도 스페인어로 부른 것 대신 영어로 부른 라틴팝이 뜨는 등 하이브리드(이종교배) 스타일의 월드 뮤직이 뜨고 있다.
3년만에 내놓은 스팅의 새 음반 「Brand New Day」」(유니버설)는 인도, 파키스탄 등 토속 음악을 차용한 동양적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특히 남성 객원 싱어 셉 마미의 여성적인 아라비아어 모컬은 월드 뮤직의 분위기가 강하다. 그간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보여온 스팅이기는 하지만 이렇게 본격적으로 동양 음악에 몰두하기 시작한 것은 이미 미국내에서도 어느 정도 자리를 잡은 월드 뮤직 바람을 인지한 때문으로 풀이할 수 있다.
국내에는 직배 음반사가 들어와 있어 사실 대중 음악에서 미국과의 「시차」는 거의 없는 편. 이제 국내에도 월드 뮤직 바람이 서서히 일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소니사에서 강력하게 후원하고 있는 리키 마틴과 제니퍼 로페즈의 뒤를 이어 유니버설이 내세운 엔리케 이글레시아스의 노래 역시 국내에서 열띤 반응을 불러 일으키는 상황.
라틴 뿐 아니라 영국 모던록을 넘어선 각국의 음악들도 속속 유입되고 있다. 포르투칼의 가요 「파두(Fado)」는 「하얀 돛배」등으로 인기를 끌었던 아말리아 로드리게스를 통해 국내 팬들 귀에도 전혀 낯선 곡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묻지마 다쳐」라는 유행어를 만들어 낸 이동통신 CF및 SBS TV 주말 드라마 「파도」의 삽입곡으로 쓰여 낯이 익은 노래는 포르투갈의 신세대 여가수 파디스타 베빈다의 노래. 포르투갈에서 태어났지만 3세때부터 프랑스에서 산 이 가수는 기타 반주에 실린 정말 암울한 파두 대신 아코디언 신시사이저 첼로 콘트라베이스 등 다양한 반주를 통해 좀 더 대중적인 음악을 만들어냈다. 이동통신 광고에 쓰인 「다시 스무살이 된다면」, 드라마에 쓰인 「파도(원제:정원)」 등을 포함한 11곡이 담긴 「파도(Fatum:운명)」(2클립스)는 94년 발표한 음반으로 클래식과 융합한 현대화한 파두를 들려주고 있다.
체크 치마를 입은 스코틀랜드 병사가 부는 백 파이프. 전자바이얼린 처럼 전통 악기인 백 파이프에 전기선을 연결, 묵직한 음 대신 밝고 경쾌한 사운드를 내는 전자 백파이프 음악도 등장했다. 스페인 출신의 호세 앙헬 에비아(32)의 음반 「No Man's Land」(EMI)는 스코틀랜드 민요(켈틱) 바탕에 샘플링 등의 현대적 기법을 결합, 묘한 하이브리드 사운드를 만들었다.
물론 미국, 유럽이 아닌 제3세계의 음반은 이전에도 간간히 수입돼왔다. 그러나 전세계적인 화이트팝 퇴조 물결을 타고 불고 있는 월드 뮤직 바람은 올 하반기를 기점으로 점차 거세질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견해이다.
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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