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잊었는가. 스물여덟에 교통사고로 요절한 지 9년. 그는 우리들의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다. 그의 흔적과 열정을 찾아 러시아로 떠나던 사람들의 발길도 끊기고, 그의 노래도 이제는 들리지 않는다. 그의 영화(감독 정지영)를 만들려는 계획도 무산된 지 오래. 러시아 한국계 3세 록커 빅토르 최.그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또 한명의 우리 「핏줄」이 있다. 중국에 처음 로큰롤 열풍을 몰고 왔고, 미국 공연까지 해낸 조선족 3세 최건(38). 91년 미국 MTV로부터 「관중이 가장 좋아하는 아시아 가수상」을 받은 로커이다.
둘은 음악으로 거대한 두 대륙을 열광시켰다. 그들은 젊은이들의 우상이었다. 「자유와 혁명」의 기수였다.
84년 4인조 록그룹 「키노」를 결성한 빅토르 최는 글라스노스트(개방)의 「마지막 영웅」이자 「태양이라는 이름의 별」이었다. 바로 그의 앨범 타이틀.
최건은 「일무소유」 「한장의 붉은 천」 「최후의 총탄」를 남겼다. 록에 중국전통악기를 결합시킨 사운드, 자유를 갈망하고 사회모순을 비판한 저돌적 가사로 그는 12억 중국인의 가슴을 뜨겁게 했다.
그들이 영화로 우리를 찾아온다. 둘이 각기 주연, 음악을 맡은 「이글라」와 「북경녀석들」이 클래식 전용극장 「오즈」(02_3443_2695)에서 4일 동시개봉된다. 단순히 노래나 부르는 가수의 일기가 아니다. 그들의 음악만큼이나 영화는 젊은이들의 삶 속에 깊이 파고들어 답답하고 우울한 현실을 비판한다. 「이글라(바늘)」는 라쉬드 누그마노프 감독의 88년작. 마약과 범죄에 찌든 무기력한 젊은이들의 개혁과 변화에 대한 갈망을 밀도있게 그려 러시아(소련)에서 1,500만명의 관객을 동원했다.
주인공 모로(빅토르 최)가 마약중독자인 여자친구를 구하려 하지만 현실은 그것을 허용하지 않고 그에게 죽음을 강요한다. 황량한 도시 거리, 사막, 물이 말라버린 호수의 배경은 삶의 힘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의 정서를 대신한다. 그곳을 지나가며 자신의 운명처럼 노래「혈액형」을 부르는 빅토르 최. 연기력도 뛰어나 89년 이 작품으로 황금의 주크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받기도 했다.
중국 인디영화 「북경녀석들」(93년)은 서사기법과 영화적 구성을 뛰어 넘어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 베이징 하층 젊은이들의 방황하는 삶을 묘사했다. 감독은 「동궁서궁」 「마마」를 제작했던 중국 6세대 장위엔. 그는 스타일과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실생활에 밀착했다. 등장인물들은 무언가에 쫓기거나, 방황하는 모습으로 일관한다. 모두 목표를 잃었다.
그들은 사랑을 잃고, 친구를 잃고, 희망을 잃고, 자신감을 잃었다. 가난과 천안문 사태가 그들을 절망으로 몰았다. 「북경녀석들」에서 제작 각본을 맡은 최건은 영화에서도 그룹사운드의 리더이다. 가난과 욕설 속에서도 자기 음악을 고집하는, 음악으로 고뇌하고 투쟁하는 「북경녀석」이다. 그가 부르는 「난 오직 나 자신만을 믿는다」에서 중국의 90년대를 통과하는 한 청년의 허무가 느껴진다. 천안문 광장과 사회주의에서 탈출하고 픈 마음을 읽는다. 95년 로카르노영화제 특별상, 베를린영화제 청년비평가상 수상작이다.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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