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고속질주하던 정부의 금융구조조정이 돌부리에 걸렸다. 감자명령을 통한 대한생명의 국영화 계획, 서울은행의 해외매각결렬등 금융감독위원회가 추진해오던 굵직한 프로젝트들이 잇따라 차질을 빚으면서 기왕의 「구조조정 추진방식」에 대한 자성(自省)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물론 「금융구조조정」의 원칙과 틀 자체가 깨진 것은 아니다. 금감위는 『대생에 대한 법원판결을 행정적 절차를 문제삼은 것일 뿐이지 결코 행정명령의 내용 자체를 잘못됐다고 한 것은 아니다』며 구조조정의 방향에는 문제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서울은행 매각협상 결렬에 대해서도 『헐값에 팔 수 없다는 것일 뿐 해외매각 원칙은 그대로 살아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절차의 하자」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는 것이 일반적 지적이다. 5개 부실은행을 비롯한 부실금융기관 퇴출, 반도체등 유사·중복산업을 통폐합시킨 사업구조조정(빅딜)등 일련의 구조조정이 추진되는 동안 국제통화기금(IMF)체제라는 비상상황에서, 또 대통령이 진두지휘하는 숨가쁜 분위기하에서, 비록 당사자들이 내놓고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지만 정부의 「밀어붙이기식」구조조정방식에 대한 비판론은 꾸준히 제기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대생측에) 사전통지나 의견제출기회를 부여하지 못할 정도로 우리 나라 경제가 비상 상황이라거나 기타 공공복리를 위해 긴급히 처분할 사정이 있다고 볼 수 없다』는 법원의 판결내용은 매우 시사적이다. 지난해에는 「비상시국」이었기 때문에 절차가 문제시되지 않는 「비상조치」들이 양해됐지만 더이상 「비상시국」이아닌 현재까지도 과거의 「비상조치」들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더이상 옳지 않다는 것이다.
서울은행 매각결렬 역시 마찬가지다. 비록 국부(國富)를, 더구나 국민경제상 막대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시중은행을 헐값에 외국에 넘길 수 없다는 불가피성은 인정되나, 「조기매각」을 대외적으로 공언한 정부가 「우리쪽 사정」에 의해 이를 연기하는 것은 어떤 형태로든 대외신인도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한 금융계 인사는 『이유야 어떻든 외국투자자 입장에선 약속불이행이다. 「한국이 사정이 좀 나아졌다고 태도를 돌변한다」는 인식을 심어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은행 및 대한생명건은 나중을 생각지 않는 구조조정추진 관료그룹의 「조급함」이 빚어낸 「예견된 결과」로 정부로선 그만큼 공권력의 공신력과 대외신인도 하락이라는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됐다.
이성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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