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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사나나 구스마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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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메이커] 사나나 구스마오

입력
1999.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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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에 독립 정부가 들어설 경우 가장 유력한 첫 수반은 20년형을 언도받고 복역중인 사나나 구스마오(53)이다. 동티모르 독립투쟁의 상징인 그의 일생은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넬슨 만델라 전 대통령과 꼭 닮았고, 만델라는 인도네시아 정부에 가장 열성적으로 그의 석방을 요구해 왔다.신학교를 졸업한 구스마오는 70년대 초반 포르투갈 식민정부 공무원, 교사 등의 일을 하다가 74년 독립운동 정치결사인 티모르사회민주연맹에 가입했다.

75년 포르투갈이 철수하자 독립동티모르혁명전선(Fretilin·프레틸린) 결성에 참여했고, 그 해 인도네시아군이 침공했다.

구스마오는 곧바로 무기를 들고 정글로 들어가 게릴라전을 시작했으며 79년 프레틸린의 무장조직 지도자가 됐다. 91년 11월 200여명이 사망한 사상 최대 규모의 반 인도네시아 독립봉기를 주도한 뒤 92년 체포됐다. 그는 자카르타의 치핀강 교도소에 수감됐지만 오히려 동티모르의 지도자로 자리를 굳혔다. 이후 국제사회의 끊임없는 석방압력이 인도네시아에 쏟아졌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동티모르의 유엔 감시하 선거가 결정된뒤 올해 2월 그를 감옥에서는 풀었지만 여전히 자카르타에서 가택연금 상태로 지내고 있다. 그러나 30일 인도네시아 법무부가 유엔 관련 사무소에 특별히 마련한 투표소에서 독립을 위해 한표를 행사하는 등 이미 그는 동티모르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정치지도자다.

투표를 마친 구스마오는 『오늘은 우리의 해방투쟁에서 위대한 역사적 의미를 갖는 날』이라며 『오늘 우리는 국제사회 앞에서 우리의 운명, 우리의 미래, 우리의 자유, 우리의 독립을 결정한다』고 선언했다. 그는 이어 지지자들에게 친 인도네시아 민병대에의 보복을 중단하라고 호소했다. 독립 정부와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는 그에게 이제는 화해와 평화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동티모르의 발전을 위해서 그는 총부리를 겨누었던 인도네시아를 포함해 주변 국가들과 우호관계를 수립해야 할 과제도 떠안고 있다. 구스마오가 화해와 용서로 피비린내 나는 수난의 역사를 수습하고 진정한 동티모르의 넬슨 만델라가 되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풀어야 할 숙제가 너무도 많다.

신윤석기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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