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경기장 건설이 한창이다. 직사각형 모양의 축구경기장은 길쭉한 쪽이 남북방향일까 동서방향일까. 정답은 남북방향. 현재 짓고 있는 국내 10곳의 월드컵경기장은 모두 남북방향에서 15도 이내로 놓인다. 또 VIP가 앉게 될 본부석은 반드시 서쪽에 위치한다. 남서쪽에서 해가 비치는 오후에 경기가 주로 열린다고 보았을 때 경기를 벌이는 선수들과 이를 지켜보는 VIP가 해를 마주보지 않도록 고려한 것이다. 많으면 10만여명이 한꺼번에 모여 열광하는 경기장의 건축은 과학의 집결체이다. 미적 측면뿐 아니라 각종 하중을 계산해내는 구조기술, 잔디생육을 고려하는 환경기술, 공기를 줄이는 경제성이 통합돼 있다. 경기장에는 어떤 과학이 숨어있을까.■햇빛과 지붕의 딜레마
축구전용경기장 설계땐 경기장 각 부분의 평균 일조시간을 알아보는 채광시뮬레이션을 거친다. 잔디의 생육에 일조와 통풍이 중요한 조건인 탓이다. 잔디가 자라는 데에는 하루 5~6시간정도의 일조가 필요하다고 알려져 있다.
대전월드컵경기장이 지붕을 여닫을 수 있게 만들어지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좌우 지붕이 15㎙씩 앞뒤로 움직여 관중석을 모두 덮고 경기가 없을때 열어둔다. 울산문수축구경기장은 남쪽과 네 귀퉁이 지붕을 반투명 아크릴소재로 만든다. 관중석에 떨어지는 비는 막고 햇빛은 투과시키기 위해서이다. 관중석을 둘러 둥글게 지붕을 덮는 서울월드컵경기장도 가려지지 않는 관중석 위에 빛이 통과할 수 있도록 아크릴지붕을 덧댄다.
부산 종합운동장 주경기장은 시뮬레이션 결과 지붕설계를 바꾼 경우. 2002년 아시안게임 경기장을 겸용하는 이 경기장은 원래 돔형태로 지붕을 완전히 덮도록 돼 있었다. 그러나 월드컵을 유치하면서 잔디생육을 고려, 지붕을 개폐식으로 변경했다가 다시 반(半)개방형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물론 예산문제도 결정적이었다. 원래 설계를 맡았던 공간건축은 지붕개폐를 위해 놀이공원의 하이테크놀로지를 가진 디즈니사의 기술을 활용하려 했다.
한국 일본을 통털어 가장 특이한 잔디유지방법은 삿포로경기장이다. 완전히 폐쇄된 돔지붕의 삿포로경기장은 밖에 잔디바닥을 따로 만들고 그 아래 모터를 장착, 경기때마다 통째로 「땅을 돌린다」. 축구경기를 하지 않을 땐 밖에서 잔디를 키우고 경기때만 경기장 안으로 잔디밭을 옮겨놓는 것이다.
■바람 견디기
제주월드컵경기장 설계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바람이었다. 제주어민들이 고기잡이를 할때 돛대에 매달아 끌어올리는 그물인 「태우」를 형상화한 한쪽지붕은 언뜻 보기에 강한 바람에 약해 보인다. 소재도 가벼운 유리섬유라 밑에서 부는 바람에 날려갈지 모른다. 이러한 구조가 위험없이 건축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에는 구조 전문가와 컴퓨터프로그램에 의한 복잡한 3차원 해석이 필요했다. 지붕 아래쪽을 크게 비워 통풍이 잘 되도록 함으로써 바람하중을 줄이고 잔디생육에는 유리하도록 했다.
또 실제 바람에 맞서보는 풍동실험도 거친다. 진짜 경기장을 실험실에 넣을 수는 없는 탓에 미니어처에 센서를 달아 360도 전방향에서 무차별 불어오는 바람에 어떤 영향을 받는지 점검하게 된다.
지붕설계가 쉽지 않은 이유는 관전에 방해가 되는 앞쪽 기둥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붕의 구조는 크게 뒤쪽에만 기둥으로 받치고 케이블로 잡아매는 막구조나 앞에 강한 철제 아치를 대고 작은 구조물을 연결하는 트라스구조를 쓴다. 서울 인천 전주 울산 서귀포등이 모두 막구조인데 폭이 70~80㎙로 넓어지면 트라스로 지지하기가 어려워 가벼운 막을 써야하기 때문이다. 막구조는 유리섬유소재에 테플론을 입혀 가볍고 보기 좋으며 수명도 길다.
■고유진동수 조절하기
간혹 경기중 흥분한 관중들에 의해 스탠드가 무너지는 사고가 보도된다. 스탠드는 500㎏/㎡의 하중을 견디도록 돼 있지만 공장에서 제작한 콘크리트를 끼워맞추는 PC공법을 쓰다보면 접합부분이 취약한 탓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피해가 심각한 대형사고는 구조물이 스스로 갖고 있는 고유 진동수가 관중의 움직임에 의한 진동과 결합, 증폭(공명)하는 경우다. 진동수가 공명할 경우 다리나 건축물등이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다. 이를 막기 위해서도 고도의 해석프로그램을 활용, 진동의 증폭을 부위마다 단절시키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
또다른 대형사고를 막기 위한 물리적 단절도 있다. 경기장같은 대형구조물은 철골구조 전체가 하나로 연결돼 있지 않고 80㎙에 5㎝정도 떼어진 익스펜션 조인트를 갖는다. 지반이 균질하지 않아 서로 다르게 침하하거나 기온에 따라 철골이 수축·팽창할 경우 구조물 전체가 한꺼번에 밀려나는 대형사고를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때로 이 부위가 마모되면서 비가 새는 일도 있다. 흔히 부실공사의 대표적 사례로 부각되는 「비새는 지붕」은 사실 이러한 단절 때문에 생기는 태생적 결함이다.
김희원기자
h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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