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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꽃보다 아름다운 발레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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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진] 꽃보다 아름다운 발레리나

입력
1999.09.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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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독일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 강수진(32)이 모스크바 국제무용협회 주최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 여성 무용수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무용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이 권위있는 상을 받음으로써, 그는 드디어 세계 발레의 여왕으로 등극했다.「99 한국을 빛낸 발레스타」 공연(9월 1·2일 서울 예술의전당, 4일 부산문화회관, 6일 광주문예회관. 문의 02_548_4480)은 그의 금의환향 무대다. 각종 국제콩쿠르를 수상한 스타들의 갈라(주요 공연 장면)로 진행될 이 공연에서 그는 「브누아 드 라 당스」의 최고 영예를 안겨준 작품 「카멜리아 레이디」중 3막 파드되(2인무)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파트너 로버트 튜슬리와 함께 춘다.

드라마틱 발레를 좋아해요

「카멜리아 레이디」는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로도 잘 알려진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이 원작. 함부르크발레단 예술감독 존 노이마이어가 안무했다. 강수진은 이 작품처럼 내면의 감정표현이 두드러지는 드라마틱 발레가 가장 마음에 들고 자신에게 맞는다고 했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 같은 클래식 발레는 사실보다는 환상을 표현하는 데 비해 「카멜리아 레이디」 「로미오와 줄리엣」 「오네긴」 같은 드라마틱 발레는 무대에서 작품 속 인물의 삶을 살기 때문에 깊은 느낌이 있어요. 「카멜리아 레이디」의 가련한 여주인공 마르그리트를 할 때는 연기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푹 빠져버립니다. 감정이 복받쳐서 울면서 춤추기도 하지요. 그렇게 공연을 마치고 나면 가슴이 텅 빈 느낌이지만, 무대 위에 모든 것을 쏟았을 때 가장 행복하지요』

눈부신 데뷔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공연이 있을 때는 아침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없을 때도 대개 밤 8시까지 연습한다. 이른 아침에는 명상으로 마음을 집중하는 등 따로 개인훈련을 한다. 오늘의 그를 만든 것은 바로 철저한 프로의식이다.

아홉살에 발레를 시작한 그는 선화예술중학교에 다닐 때 발레의 명문 모나코왕립발레학교의 마리카 베소브라소바 교장에게 발탁돼 졸업후 그 학교로 유학을 떠났다. 3년 뒤인 85년 스위스 로잔 국제콩쿠르에서 동양인으로는 최초로 그랑프리를 차지한 데 이듬해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최연소로 들어갔다. 당시 21세. 세계 각국의 무용수로 이뤄져 「발레의 유엔」으로 불리는 이 발레단의 동양인 무용수는 현재 그와 일본인 1명 뿐. 발레단으로는 세게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여기서 그는 군무, 솔로를 거쳐 93년 「로미오와 줄리엣」의 줄리엣 역으로 프리마 발레리나로 데뷔했다. 20여 차례의 커튼콜과 꽃다발에 파묻힌 눈부신 데뷔였다. 당시 이 발레단의 예술감독 마르시아 하이데는 공연을 앞두고 자신이 30여년간 입었던 줄리엣의 의상을 그에게 물려줬다.

한국발레에 대해

프리마 발레리나로 데뷔하기까지 7년간의 경험이 무척 도움이 됐다고 한다.

『군무부터 차근차근 해왔기 때문에 기본을 다질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여럿이 하는 군무가 혼자 춤추는 것보다 힘듭니다. 발레는 무대 위의 삶입니다. 군무 따로, 솔로 따로여서는 좋은 공연이 될 수 없지요』

차분하고 겸손하게, 그는 말을 이어갔다. 가장 존경하는 무용수는 루돌프 누레예프. 『그는 뭔가 특별합니다. 남과 달라요. 아주 깊고 강렬한 느낌을 줍니다. 그가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한국발레에 대해 그는 『전보다 모든 것이 좋아졌다』면서 『하지만, 진짜 필요한 것은 훌륭한 지도자와, 무용수를 편하게 해주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무용수가 다른 걱정 없이 춤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적 지원 등 뒤에서 밀어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꽃에 이름이 붙은 강수진

막이 오르기 전, 그는 무대를 손으로 한 번 치고, 토슈즈로 세 번 두드리는 버릇이 있다. 그러면 행운이 올 거라고 믿으면서.

『발레, 참 힘들지요. 그렇지만 아무리 힘들어도 후회할 수 없어요.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발레를 하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그는 독일에서 혼자 살고 있다. 언젠가 꼭 결혼하고 싶은데 아직은 때가 아닌가보다고 말한다. 시인 이상의 친구였던 화가 구본웅이 그의 외할아버지. 사업가인 아버지, 주부인 어머니, 부천 시향과 독일에서 각각 활동중인 하프연주자인 언니 여진과 여동생 혜진, 미국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있는 남동생이 있다.

그가 노란색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지난해 슈투트가르트의 난재배업협회는 노란 꽃의 신품종 난에 그의 이름을 붙였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했던가. 향기롭고 아름다운 발레리나 강수진. 그를 사랑하는 것이 어찌 슈투트가르트 시민 뿐이겠는가.

오미환기자 mhoh@hk.co.kr

*내가 본 강수진

■최태지 국립발레단장

드라마틱 발레의 최고 무용수라고 생각한다. 표현력이 아주 뛰어나다. 발레가 예술임을 느끼게 해주는 예술가다. 97년 국립발레단 「노틀담의 꼽추」에서 여주인공 에스메랄다를 할 때, 그는 미리 보내준 비디오를 보고 배역을 완전히 소화해서 한국에 들어왔다. 리허설에서는 감정표현을 다듬고 파트너와 호흡 조절만 하면 될 정도였다. 프로로서 완벽하게 준비가 돼있었다.

어떤 단체와 일을 해도, 어떤 상황에서든 불평하지 않고 자신이 맡은 역 안에서 최선의 기량을 보여준다. 이번 공연의 리허설에서도 음악 속에 몸을 던져 연습하는 모습에 감동했다. 다른 무용수들도 그의 무대를 보고 배우는 게 많을 것이다.

■문훈숙 유니버설발레단장

연기력이 뛰어나고 감정이 풍부해서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무용수다. 철저한 프로의식을 갖고 있으면서도 겸손하다. 96년 유니버설발레단의 「지젤」 공연 때 그는 외국에서 왔다고 거리감을 주거나 스타라고 어깨에 힘주는 일 없이 단원들과 사이좋게 지내 모두들 좋아했다.

외국인들 틈에서 실력으로 버티고 이겨서 우뚝 정상에 섰다는 게 자랑스럽다. 처음부터 주역을 한 게 아니고 사다리를 오르듯 군무부터 단계적으로 성장한 것이 큰 도움이 됐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게 순리이고 그래야 무대에서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

■무용평론가 장광렬

세계 어느 무대에 내놔도 뒤질 게 없는 톱 클래스 무용수다. 그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발레단에 들어가 군무부터 솔리스트를 거쳐 주역까지 7년간 차례차례 단계를 밟아 많은 경험을 하면서 레퍼토리를 늘렸기 때문이다. 또 동양 문화권에서 성장해 서구인과 다른 그만의 독특한 감수성이 있는데 그게 장점이 되었을 것이다. 같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해도 그는 자신만의 줄리엣을 표현할 줄 안다.

오늘이 있기까지 자신과의 치열한 싸움을 이겨낸 것은 물론이다. 끊임없는 연습과 동료들과 잘 지내는 좋은 성격으로, 동양인에 대한 편견을 씻어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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