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31일 사실상 대한생명 주주의 손을 들어준 것은 「행정처분은 정당한 법절차에 의할 때만 효력을 가진다」는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이다. 이에 따라 현재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중인 8건의 부실금융기관 관련 소송에서도 금감위 처분의 절차적 적법성이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이번 소송의 핵심쟁점은 금융감독위원회의 대한생명에 대한 부실금융기관지정과 감자처분이 과연 적법한가의 문제. 그러나 재판부는 처분의 적법성은 절차적 적법성을 확보한 다음의 문제이며, 목적을 중시한 나머지 절차를 경시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못박았다.
재판부가 지적한 금감위 처분의 절차상 하자는 크게 두가지이다. 첫번째는 사전통지의 결여. 행정처분이 있을 경우 행정청은 행정절차법에 따라 처분내용과 법적근거를 사전에 당사자에게 통지해야 하지만 금감위의 처분에서는 사전통지가 없었다고 법원은 판단했다.
의견제출을 할 기회를 주지 않은 점도 하자로 지적됐다. 재판부는 대한생명측이 처분의 부당함을 주장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에서 금감위의 처분은 행정절차법 위반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이 기존 주주들의 재산권을 박탈하는 중대한 처분임에도 불구하고 주주들에게 사전통지나 의견제출의 기회조차 주지 못할 정도의 긴급한 필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특히 금감위가 「금융산업의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이하 금개법)」을 내세워 이 법률에 의한 행정처분에는 행정절차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주장에 대해선 『규정에도 없다』며 일축했다. 그동안의 금융기관 구조조정과정에서 금감위의 일사천리식 처리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는 대목이다.
나아가 이번 처분이 취소되면 대한생명에 대해 더많은 시간과 공적자금이 필요하며 대외신인도에도 엄청난 타격이 예상된다는 이유로 금감위가 처분의 위법성은 사소한 문제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선 법질서에 위배한 판결이 장기적으론 공익을 더 저해한다고 밝혔다.
이번 판결은 절차상 하자 등을 들어 금감위의 처분을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린 것은 사실이나 금감위 처분의 실체적 적법성에 대해서는 판단을 유보, 금감위가 절차상 문제를 해결하고 항소할 경우 상급심의 판단이 주목된다.
손석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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